진심으로 말하건대, 이제는 ‘개독’이라 불리곤 하는 한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안쓰럽고 측은하다. 그 처연한 결기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무식이 무슨 죄겠나. 지난 일요일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한답시고 기독교인들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발레를 췄다. 더운 날 연습도 많이 했을 텐데, 차이콥스키가 러시아 대표 게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그리고 테러 당시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고 개고기까지 진상했던 그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세상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곧장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가서 성소수자들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때 배신당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심지어 그 상처들을 껴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며 북을 쳤는데 한글 모르는 외신기자들이 그들을 ‘퀴어 퍼레이드 축하공연단’으로 기사화했을 때 또 얼마나 허탈하고 무릎이 꺾였을까.
참으로 가련하다. 전날, 그들이 짝사랑하던 미국에서조차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간절한 마음으로 득달같이 달려왔을 텐데, 사방에서 조롱과 야유만 쏟아지니 그 황망한 마음 어땠을지 어찌 가늠하겠나.
그들의 호모포비아 광증은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시대적 운명이라지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처럼 LGBT 인권문제를 공공 의제화하는 데 혁혁한 공만 세우다 저렇게 놀림감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심히 마음이 어지럽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동성결혼을 비롯한 LGBT 의제들이 이렇게 사회적 공론장에서 격렬하게 부상하지 않았을 터, 그들의 공이 무척 크다.
이런 가상한 노력은 안중에도 없이, 세계는 그들에게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뒤늦게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LGBT 인권을 팍스아메리카나의 새로운 기치이자 자유주의 이념의 새로운 항목으로 주창하는 미국,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LGBT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중국, 서서히 동성결혼이 가시화되는 일본. 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나라인 한국의 처지에 ‘세속화’의 질문은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 이 거대한 시대의 물결에 포위되어 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끊임없이 증오를 투사할 ‘타자’를 찾아 떠나는 그들이 동성애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게 채 10년도 안 됐다. 그들 덕에 LGBT 인권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그들 덕에 엊그제 퀴어 퍼레이드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버선발로 달려왔다.
우리는 당신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 없다. 사랑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변해? 당신들의 노이즈 마케팅이 더 강렬해져야 공공 의제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당신들이 서럽게 북을 두드리고 부채춤을 춰야 구경꾼들이 더 몰려오지 않겠는가. 당신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스폰서다. 너무 빨리 사그라질까봐, 본전도 못 뽑고 당신들이 휴거될까봐 마음이 참 불안하다. 갈 때 가더라도 지금은 가지 마세요.
힘을 내요, 슈퍼 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