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면서, 한국영화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충무로에서 ‘표절’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범죄’라는 자의식도 없이 대중문화계가 개봉 전의 일본 텍스트를 마구잡이로 베껴대던 오래전의 ‘흑역사’는 논외로 하고). 사소한 비리가 일상화된 두 경찰의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클라우드 지디 감독의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1984)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한국적 변형’과 ‘창조적 모방’이라는 아슬아슬한 창작의 경계 위에서, 그래도 <투캅스>는 자신만의 고유한 지분을 획득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반 라이트만의 <데이브>(1993)와 비교되며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광해, 왕이 된 남자>(2013)의 경우도, 추창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 이전에 최초 감독으로 내정됐던 이가 바로 강우석 감독이었다. 감독도, 제목도, 주연배우도 바뀌기 전 <나는 조선의 왕이다>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던 당시 인터뷰를 찾아보면, 그는 수차례 공개적으로 <데이브>를 언급하기도 했다. 표절하려는 이가 처음부터 원전을 들먹이지는 않으리라.
말하자면, 특집 중 안시환 평론가의 얘기대로 영화는 표절과 오마주의 경계가 무척 모호하다. 표절이건 오마주건 그 ‘인용’이 풍부하고 정확할수록 ‘감독이 공부 많이 했네’ 혹은 ‘정말 포스트모던하군’이라고 보는 시선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표절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음악계와 비교해, 시청각 매체인 영화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너무 애매하다. 음악처럼 이른바 2소절, 즉 4마디의 유사성으로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물론 이 또한 법적 절차에 따라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을 세우기가 사실상 어렵다. 스토리 진행과 소재, 그리고 화면 구성의 유사성 정도가 언급될 뿐 구체적인 대사나 장면의 지적이 성립된 적이 없다. 이어지는 이주현 기자의 글에서 보듯, 그로 인해 법정 공방에까지 이르더라도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 “표절이다. 그런데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부조리한 말이 법원에선 종종 성립된다고도 덧붙였다. 이거 참 기묘하죠?
이번 특집을 준비하며 취재팀 내부에서 공유된 의견은, 역시 식상한 결론이긴 하지만 어떤 ‘윤리’의 문제였다. 딱 표절이다, 라고 말할 만한 사례는 드물지만 혐의가 짙은 작품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영화와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들 얘기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바로 그 윤리 측면에서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끊임없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갈증을 품고 사는 것이 예술가의 자존심이라면, 갈수록 그런 예술가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것이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다.
한편, 지난 1010호의 두께가 유난히 얇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다. 가격 인상 이후 지면 개편을 이유로 꼼수를 부린 거냐는 항의도 있었다. 굳이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최종 편집 단계에서 무려 8페이지 분량의 대담 지면을 덜어냈던 것이 컸다. 해당 대담이 빠지게 된 까닭은, 양측 사이에서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했으나, 한 단체가 본인들의 입장만을 기사 내용에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에도 ‘기사’라는 형태로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고 폭언까지 퍼부었다. <씨네21>은 한 단체만의 주장을 대변해주는 매체가 아니며, 본인들의 입장만을 받아쓰기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매체에 대한 명백한 침해 행위다. 그 대담 기사는 그대로 내보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 증거가 될 최초의 녹취록과 증빙 자료들을 갖추고 있으며 기사에 대해 납득 가능한 충분한 설명도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자존심과 재능을 두루 겸비한 예술가를 찾는 일만으로도 바쁜데, 생각지도 못한 무례한 예술가의 공격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이것 참 힘들다. 어쨌거나 결론은, 1010호만 그랬다는 것을 알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