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고,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다고 푸념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둘 다 없다. 시간이든 돈이든 어느 하나만 충분히 많아도 여행을 떠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둘 다 늘 태부족이다. <이다의 작게 걷기>는 떠나지 못하는 핑계를 찾아내는 데 선수인 사람들을 위한 ‘궁하면 통하는 동네 탐방기’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다의 그림여행기인 이 책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단골집, 삼청공원과 운현궁을 비롯한 서울 시내 걷기를 포함해 통영, 안동, 경주 여행기가 실렸는데, 애초에 이 장소들을 탐방하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첫 해외여행으로 24살 때 터키에 다녀온 뒤, 이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나라는 기본이고, “나 자신도 미처 몰랐던 웃고 밝고 행복한 나”를 말이다. 귀국 직후부터 다시 떠나기를 갈망한 건 놀랄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실행에 옮길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여행을 찾자는 “가난뱅이 근성”의 결과가 <이다의 작게 걷기>다. “이 모든 걸 발견하게 된 것은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때론 용기가 없어서. 그러니 지금 여기를 즐기자. 여기의 아름다움을 찾자. 여기의 즐거움을 찾자.” 늦은 밤, 피곤한 발걸음, 빠르게 지나가는 차 안에선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작게 걸으며 보게 되었다. 이 작은 걷기를 나서며 이다가 잊지 않고 챙긴 것은 두 다리, 스케치북, 연필과 펜, 눈과 귀다. 그리고 당연한 준비물이라 생각했던 이어폰, MP3, 카메라는 집에 두고 갔다. 천천히 걷고, 멈추어 바라보고, 손으로 그리고, 소리로 기억하기 위해서. 참고로 말하면 이다의 <끄적끄적 길드로잉>이라는 책도 같이 출간되었다. 이다가 누구라도 한눈에 반할 섬세한 펜터치와 환상적인 컬러링을 자랑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점은 이 두권의 책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다. “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금방 알게 된다.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손이 있다고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이들이 지나치는 풍경과 순간들을 자기 방식으로 포착해 재현한다는 일이 꽤 어렵다는 것을. 조부모님 댁에 갔다가 오디나무를 흔들어 오디를 줍는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흐르는 것인지 모르게 산만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병든 할배가 문경 사투리로 결혼하라고 압박하는 “좋은 사람은 찾을라카면 못 찾아여~. 밀가루 반죽 매로 내가 주물러서 만들어야 되는기”, 어린 시절 조부모님 댁에서 보낸 추억, 이제 공장이 들어서면 사라질 동네에 대한 아쉬움, 할매의 요리 맛보기가 아련하게 흐른다. 떠나는 것과 다른 지금, 여기 머무는 재미를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