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8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저 모래 풍경들과 같이 다 지나갈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지나갔듯이, 청춘이 멍에 같은 가난한 고향을 둔 죄로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사이 지나갔듯이, 그 멍에를 지나서 고생했던 3년이 고국의 불타오른 부동산 바람에 공허히 지나갔듯이, 앞날도 그렇게 지나가리라, 고 생각하니 못 견딜 일이 없었다”고 신경숙은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썼다. 그의 심경이 딱 저러할 것이다. 지금의 논란도 적당히 다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면, 창비가 지금보다 더한 변명을 둘러대건, 미시마 유키오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건, 결코 못 견딜 일이 없을 것이다. 같은 대목에서 이렇게도 덧붙였다. “다가와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으므로….” 어쩌면 신경숙 작가야말로 ‘아몰랑’ 화법의 원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등 18인의 유명 작가들의 작법을 분석해 쓴 <거장처럼 써라>에서 저자 윌리엄 케인은 ‘모방’이야말로 문학적 기교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라고 말한다. 신경숙 작가 또한 평소에 자신의 문장력은 부단한 ‘필사’의 과정을 통해 얻어졌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흠모하는 작가의 태도나 스타일을 익힌다는 것이지 ‘복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아몰랑 작가님의 개념 안에서는 어느덧 필사와 복제의 경계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외딴방에 들어가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에서 선영(추상미)이 남겼던 메모를 되뇌고 있을 것이다. ‘내 안의 당신, 당신 안의 나.’
이번 신경숙 사태를 보면서, 나 또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 종종 표절의 유혹 혹은 시간에 쫓기고 능력에 치여 이른바 ‘우라까이’(기존의 글을 두루뭉술 재탕하는 것)하는 비애까지 심심찮게 겪곤 한다. 그래도 어쨌건 새로 지어내어 몇 마디 덧붙이는, 남들이 의심하지 못하게끔 최소한의 성의라도 있는 척하려고 덧붙이는 말들이 있다. 보통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예 새로운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를 최초로 지적한 이응준 작가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비교한 대목들을 보니, 신경숙 작가가 새로 지어내 덧붙인 문장들이 하나같이 별로였다. 내게는 그것이 표절만큼이나 더 슬프고 안돼 보였다.
다른 일에 열을 내면서 1010 개편호의 새 코너에 대한 소개가 늦어졌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새롭게 풀어낼 ‘씨네 해시태그’와 노스탤지어 가득한 사진들로 채울 ‘메모리’, 그리고 기자들 저마다의 취재 뒷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줄 ‘씬스타그램’을 만들었다. 그외 연재 코너로 ‘황덕호의 시네마 애드리브’,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그리고 ‘한창호의 오! 마돈나’에 이은 영화 기행문 ‘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이 번갈아 연재된다. 김봉현, 배순탁, 이대화, 홍석우 등 글 쓰는 남자들의 모임 ‘마감인간’의 뮤직 코너도 신설했다. 오프라인 지면 개편과 함께 곧 인터넷 홈페이지도 새 단장을 한다. 계속적인 관심과 애정 부탁드린다.
PS. 6월23일경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 페이지에 <씨네21> 1호부터 1000호까지, 네이버와 함께 뽑은 인상적인 50개의 표지를 싣기로 하였다. 윤혜지 기자가 몇 마디의 추억을 덧붙였다. 독자 여러분과 추억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