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당신을 기소했다. 당신은 무죄를 주장한다. 그런데 검찰은 당신이 범인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검사가 손에 쥔 수사자료는 열람이 금지되었다. 법정에서 항변해보지만 판사는 검사에게 수사자료를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증거들은 현장에서 사라졌다. 국과수에서는 그 증거들이 ‘분실됐다’고 말한다. 청와대에서 경찰에 보낸 이메일이 발견된다. 흉악범죄 사건을 보도하여 당신에게 쏠린 시선을 분산시키라는 내용이다. 당신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죄가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용산참사 사건(대법원 2010도7621)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당신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의도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고 전용철씨의 유족이 그랬다(서울중앙지법 2006가합100689). 물론 한때 집회시위법에 야간옥외집회를 경찰이 진압하도록 허용했었지만 그조차도 위헌판결(2008헌가25)이 났다. 하지만 국가소송에서 법원은 시위자의 과실을 물어 국가배상액을 깎아내리는 경향(대법원 95다23897)이 있다. 어쩌면 실질적인 보상액을 포기하더라도 당신의 절박함을 세상에 알리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천성산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율 스님이 조선일보사에 10원을 청구한 것처럼(서울중앙지법 2008가합36218) 말이다. 소송 과정에서 지저분한 냄새를 맡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당신에게 접촉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 당신을 공개적으로 도울 수는 없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서울중앙지검 2013형제24353사건외)에서 그랬듯이, 여당은 그것을 빌미삼아 국정조사를 무산시키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에 굶주린 검사는 가끔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곤 한다. 제주도에서는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에 써 있지도 않은 물건을 멋대로 압수해간 사건(대법원 2008도763)이 일어났다. 반대로 당신이 확보한 유일한 증인은 거액의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반사회적 계약으로 무효다(대법원 98다52483). 아, 검사를 만날 때는 휴대용 녹음기를 숨겨 소지하는 것을 잊지말도록. 제이유 사건(대법원 2007도6012)에서 검사의 거짓말이 탄로난 것도 이 휴대용 녹음기 덕분이었으니까. 녹음된 파일을 복사해둘 때는 원본과 사본을 확실히 구분해두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똑같아도 법률적으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서버와 연동된 하드디스크를 사본으로 여겨 반출했다가 퇴임 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클라우드 방식으로 동시 저장되는 파일에도 형과 아우가 있는 셈이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꼭 무언가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이 사건들을 한데 모아 붙이면 영화 <소수의견>의 이야기가 된다.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