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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희] 유연한 서른맞이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5-06-22

<나의 절친 악당들> 고준희

폐주유소에서 혼자 살며 맨발로 레커차를 모는 여자. 악당에게 쫓겨도 절대 기죽지 않는 여자.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고준희가 맡은 나미는 당당하고 멋진 여자다.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거액의 돈가방을 발견하고, 그 일로 정체불명의 조직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누구라도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 초조해하기는커녕 가방에 든 돈을 함께 나누기로 한 지누와 사랑에 빠지질 않나,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진짜 미친년이 뭔지 보여주겠다”며 큰소리 뻥뻥 치질 않나.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꼭 껴안고 눈물 핑>(2011)), 사랑과 섹스에 개방적인 데다가(tvN 드라마 <일년에 열두남자>(2012)), 사랑 앞에서 순정적이었던(<레드카펫>(2013)) 전작이 고준희의 당당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를 단면적으로만 골라 활용했다면, 나미는 그녀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 합친 캐릭터로 보인다.

고준희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나미가 “진심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게 매력적”이었다. “마냥 세지도, 가볍지도 않고 자기중심이 있었다. 의리도 넘치고. 멋진 여성이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남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하는 여성 캐릭터를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미는 고준희뿐만 아니라 어떤 여배우라도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했다. 이 캐릭터를 잡기 위해 정성과 열의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임상수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 관심이 많았는데 캐릭터가 멋지기까지 해 <레드카펫>을 끝낸 뒤 1년 가까이 다른 작품을 하지 않고 <나의 절친 악당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믿고 기다리는 것만큼 좋은 정성도 없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고준희는 나미라는 옷을 입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액션 신과 노출 신이 있었던 까닭에 두달 가까이 베스트 스턴트에서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날씬한 몸매 때문에 운동과 친숙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평소 운동을 싫어한다고. “원래 근육이 잘 안 생기는 체질이기도 하고. 목 디스크가 있어 액션 신이 항상 무서웠다. 이번에 몸을 준비하고 첫 액션 신을 찍었는데 재미있었다.” 현장에서 임상수 감독이 고준희에게 특별히 주문한 건 없다고 한다. 그녀를 최대한 편하고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미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임 감독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안 되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편했다.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덕분에 마음껏 하려고 했다.” 임상수 감독과의 첫 작업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 부담을 주진 않았을까. “원래 부담감을 잘 안 느끼는 성격이다. 어릴 때 다른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고현정 선배와 <여우야 뭐하니>(2006)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단련이 된 것 같다. 물론 그런 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만나 반가웠고, 그래서 오랜만에 연기하는 (류)승범 오빠와 나를 믿고 캐스팅해주신 임상수 감독님께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부담감은 잘 안 느끼는 성격이지만, 그녀는 쟁쟁한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절친 악당들>을 찍는 사이, 고준희는 서른살이 됐다. 20대 땐 나이 먹는 게 두려웠는데 막상 서른살이 넘은 지금은 무덤덤하다고 한다. 물론 서른살이 됐던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동안은 힘들었다고. “20대 때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12월엔 그런 생각이 안 들다가 1월1일에 슬프더라. 지금은 안 그런다. <나의 절친 악당들>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유연해진 것 같다.” 그 점에서 <나의 절친 악당들>은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는 고준희의 새로운 출발선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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