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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나오미와 가나코>
이예지 사진 백종헌 2015-06-18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 김해용 옮김 / 예담 펴냄

단숨에 읽힌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는 독자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전개. <나오미와 가나코>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쉬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이유는 저자 오쿠다 히데오가 스타일의 변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쿠다 히데오는 유머러스한 풍자물과 진지한 사회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경향을 통합하면서 결정적으로 서스펜스를 작품에 적극 도입한 결과물이다. 서스펜스는 스피드를 만드는 강력한 엔진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백화점 외판부 직원 오다 나오미와 남편의 폭력에 노출된 주부 시라이 가나코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 둘은 가나코의 남편이 행사한 폭력에 대항하여 일명 ‘클리어런스 플랜’(clearance plan)을 계획하고 실천해나간다. 클리어런스 플랜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오미가 친구 가나코를 도와 그의 남편을 ‘제거’(살인)하는 계획이다. 소설은 이 ‘제거’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나오미 이야기’와 ‘제거’ 이후의 혼란을 담은 ‘가나코 이야기’로 구분된다.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는 살인이라는 결승점을 향하면서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단계다. 그들은 자신들의 플랜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보는 독자들은 허술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불안감을 남긴다. 그들의 완전범죄는 결국 실패할 것인가. 쉽게 책을 놓을 수가 없다. 후반부 ‘가나코 이야기’는 전반부에 구축한 불안감이 하나씩 정체를 드러낸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계획의 허술함이 드러날 때마다 독자들은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럴 줄 알았다. 소설은 다음 결승점으로 달린다. 살인 계획에서 도피 계획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잡히고 말 것인가. 서스펜스는 새 옷을 입었다.

소설 전반에 스며든 두 가지 서스펜스는 독자의 눈을 붙들어맨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소설이다. 이 롤러코스터는 서스펜스라는 엔진으로 달린다. 그것이 이 소설이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는 이유다.

맛있는 물이 먹고 싶어

나오미는 즉흥적인 의견을 말로 옮기면서 정말 이게 실현될 수는 없을까, 하고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농담이 아니라 다쓰로는 죽는 편이 낫다. 아니,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나오미가 묻자 가나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고 말했다.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뭐야, 맛있는 물이라는 게.” “써. 물이. 처음에는 입속이 갈라져 따끔따끔 아팠는데 그게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쓰게 느껴져.” “그래…. 틀림없이 정신적인 문제일 거야.” 맛있는 물이라. 나오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가나코는 평범한 일상조차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잃은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탈출할 기운도 빼앗겼다. 남편의 폭력에 의해.(124~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