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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2002-03-12

국내에 소개된 몇 안되는 이란 영화들은 대부분 천진난만한 아이들 동심의 세계나 삶과 죽음을 관념적으로 다룬 내용이었다. 이에 비해 <써클>은 어른들의 실제생활, 그것도 이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화면에 아이를 막 출산하려는 산모의 신음 소리만이 한참 들려온다.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화면이 밝아지면, 간호사가 병실 문 위쪽에 나 있는 조그만 창을 열고 딸의 출산을 알린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는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두 번, 세 번 같은 얘기를 듣고 나서야 “딸을 낳았으니 집에서 쫓겨날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비척비척 병원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 샌가 친정어머니는 카메라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 그가 스쳐지나간 병원밖 공중전화 박스 옆의 세 여인에게 머문다. 감옥에서 갓 출감한 머에데, 아레주, 나르게스 등 세 여인이다. 이들은 나르게스가 어릴 적 행복하게 지냈던 고향 라질리그에 갈 계획이다. 그런데 이유도 모른 채 머에데가 경찰에게 끌려가고, 아레주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 몸을 팔아 나르게스에게 여비를 마련해주고는 사라진다. 아레주는 나르게스가 의지하는 그곳도 결코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홀로 남은 나르게스는 학생 신분증이나 남자 동행이 있어야만 표를 팔 수 있다는 매표원에게 학생이라고 속여 어렵사리 표를 구한다. 그러나 버스 앞에서 검문하는 경찰을 보고 도망친다. 이란 영화에는 골목이 자주 등장한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여동생 자라가 오빠에게 운동화를 돌려주기 위해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달렸던 골목길, <하얀 풍선>에서 꼬마 소녀 라지에가 엄마에게 어렵사리 받은 돈으로 금붕어를 사기 위해 신나게 달렸던 골목길 등. 그러나 <써클>의 골목길은 그런 순수한 장소가 아니다. 거리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고, 남자 동행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여성들이 사냥꾼을 피하려는 동물처럼, 경찰로부터 몸을 숨기는 공간일 뿐이다. 골목길로 숨어든 나르게스가 찾아간 곳은 감옥에서 알게 된 친구 파리의 집. 카메라는 이제 나르게스를 버리고 파리에게 초점을 맞춘다. 파리는 감옥에서 임신한 채 출옥한다. 그러나 아빠없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다. 친정 아버지와 남편의 동의 없이는 아이를 지울 수도 없고, 남자 동행 없이는 여관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저 추운 밤거리를 헤맬 수 밖에 없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카메라는 파리에게서 딸을 길가에 버리고 도망치는 여자, 매춘부로 초점을 옮겨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첫 장면에서 딸을 낳은 산모를 포함해 이들은 모두 감옥에서 만난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샷은 담담하게 여성들의 표정을 보여준다. 드라마틱하지도, 감상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이란에서 여성의 삶이란 감옥 그 자체라는 메시지와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극장문을 나서면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써클>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아직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감독 자파르 파나히. 16일 개봉. 신복례 기자bo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