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다. 독서가와 장서가다. 독서가는 책을 읽기 위해 산다. 장서가는 책을 수집하기 위해 산다. 그렇다면 만화책을 사는 사람들은? 독서가와 장서가의 기준으로 나누기가 애매해 보인다. 웹툰을 보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책까지 사는 사람들은 독서가일까 장서가일까.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오타쿠와 비(非)오타쿠의 구분이다. 오타쿠는 독서가 겸 장서가다. 국내에서 팔리는 만화책의 대부분은 아마도 오타쿠들이 구입한 것일 테다. 그런데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이 구입한 만화책도 있다. 윤태호의 <미생>이 그랬다.
네이버에서 2013년부터 연재되고 있는 만화가 최규석의 <송곳> 단행본 1∼3권이 출간됐다. 지금도 네이버에서 몇번의 클릭만 하는 수고를 들이면 무료로 볼 수 있지만 이 책을 구입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아마도 당신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 즉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생>이 그렇게 팔려나간 그 이유가 <송곳>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만화책으로는 드물게 열린 <송곳>의 출간기념 기자회견에서 최규석이 말했다. “독자분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미생>을 읽다가 회사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송곳>을 보면 좋지 않을까. (웃음)”
<송곳>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외국계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이야기다. 한국까르푸-이랜드 홈에버 노조의 투쟁을 모티브로 했다. 노조 만드는 이야기가 재밌을까. 최규석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취재를 당한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이 띠지에 등장한다. 그는 노무사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송곳>을 보는 것이 더 많은 공부가 된다”면서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프롤로그부터 보시라”고 말했다. 하종강의 말에는 <송곳>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송곳>에 노동운동과 관련된 실재하는 대한민국의 노동법 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프롤로그에 대한 부분으로, 프롤로그만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최규석의 공력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송곳>에는 노조를 만드는 “송곳 같은” 인간 이수인 과장이 있다. 그를 돕는 “떼인 임금 받아주는” 구고신은 노동법 까막눈인 노동자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외국의 사례를 든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1년에 여섯번하고, 프랑스는 고등학교 사회수업 3분의 1이 교섭 전략 짜는 거”라고. 다시 만화책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오타쿠든 아니든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되려 하는 당신은 학교에서 저런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가. <송곳>은 국가가 하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재다. 과장하면 생존지침서다. 언제 노조 조끼 입을 날이 올지 모를 일이다. 독서가 겸 장서가인 오타쿠가 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