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너무 많다. 일주일에 십수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보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영화들을 알아야 할까. 갈피를 잡기 어렵다면 <씨네샹떼>로 먼저 방향을 잡아볼 것을 권한다. <씨네샹떼>는 강신주 철학자와 이상용 영화평론가가 25주간 CGV아트하우스와 진행한 시네토크의 일부와 그들이 각자 ‘철학자의 눈’, ‘비평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쓴 영화글들을 한데 모으고 정리해 펴낸 책이다. 영화사의 걸작 스물다섯편을 철학자로서, 비평가로서 두 가지 시선에서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씨네샹떼>는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에 편한 영화글이다. 인용된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수록된 시놉시스와 작가에 관한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이 책에 정리한 영화의 기준을 “동시대 영화”라고 보았다. 지금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서 모두 “동시대 영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르조 아감벤의 <벌거벗음>을 인용한다.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은 동시대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을 ‘영화’로 바꾸어본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영화는 동시대 영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 영화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씨네샹떼>에 모은 스물다섯편의 영화는 이러한 기준에서 동시대 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글을 나누어 테크놀로지로서의 영화, 영화사적 경향과 영화 서사의 흐름, 정신의학적 관점에서의 영화보기, 현대영화에 깃든 삶의 성찰까지 두루 살핀다. 각 장에 붙은 ‘To be continued’는 이 영화들에서 영향받은 다른 영화 혹은 감독을 기록하였다. 책 말미의 ‘키워드’는 더욱 상세한 가이드를 도울 것이다. 영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그 의미가 더욱 깊고 넓어진다. <씨네샹떼>의 두 길잡이가 우리의 영화적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본래 이름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우리에게 묵직한 교훈을 준다. 본래 이름,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이 호명했던 이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의 본래 이름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을 반드시 되찾게 된다. 결말에서 유바바가 마지막 농간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돼지 열 마리 중에 너의 부모를 찾아라. 그러면 부모와 너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치히로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눈앞에 있는 열 마리 돼지 중에는 자신의 부모는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치히로라는 이름을 잊지 않은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사랑으로 부른 사람을 찾지 못하겠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지금 우리는 본래 이름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치히로가 아니라 센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p.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