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대해 몇 가지 항목을 점검해보자.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할 때 쉽게 불안을 느끼는 편이다. 양육자로부터 상처받은 적이 자주 있으며 그들로부터 생활을 간섭받고 싶지 않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기피한다. 전부 그렇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어쩌면 ‘회피형 인간’일지도 모른다. 정신의학과 뇌과학에 정통한 오카다 다카시 박사가 저술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최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회피형 인간’의 정의를 밝히고 이러한 유형의 인간들이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를 알려준다. 물론 회피형 애착 성향을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첨언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인 헤르만 헤세, 미야자키 하야오, 키에르케고르, 조앤 K. 롤링, 칼 구스타프 융, J. R. R. 톨킨, 마리 퀴리도 모두 회피형 인간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카다 다카시 박사는 이들이 가진 회피형 애착 성향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떠한 면에서 이들을 회피형 인간으로 진단하였는지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가령 헤르만 헤세의 어머니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헤세에게 강요하면서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헤세를 비난하였다고 한다. 헤세는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부터 병문안을 기피했으며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도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꺼렸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사망한 후에야 헤세는 작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전 기지”가 되어주어야 할 부모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면서 헤세의 내면에는 불안과 우울이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회피형 애착 성향은 아주 보편적인 성격요소다. 단지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책 말미에는 자신의 애착 성향을 진단해볼 수 있는 테스트지가 첨부돼 있다. 어쩌면 우리도 의외로 많은 항목에 점수를 매기게 될지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 아직 그 준비가 덜 된 것이다
회피형 인간은 괴로울 때일수록 관계를 피하려 한다. 솔직하게 괴로움을 표현하거나 응석 부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로 마음을 닫아버린다. 침묵하거나 무뚝뚝한 태도를 보여도 나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또 입 다물었어?”라거나 “도대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라고 질책하면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중략) 대답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는 게 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 대원칙은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공감하고 긍정하는 응답을 유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핵심이다. (중략) 말하지 않으면 아직 그 준비가 덜 된 것이다.(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