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너무나 커다란 고통 앞에 차마 무어라 할 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속엔 너무 많은 말이 뒤엉켜 있는지도 모른다. 비단 누구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는 9월11일 안산시 와동에 ‘이웃’이라는 이름의 치유공간을 마련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다 넘어지면 약 바르고, 허기지면 함께 밥술 뜨고, 지치면 쉬었다 가고, 외로우면 함께 울고, 아이들 얘기하다 웃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진은영 시인은 ‘이웃’을 방문해 정혜신 박사에게 세월호 참사가 안긴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해 질문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여러 달에 걸친 이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책이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상세한 보고서이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안할 것을 천명하는 제언이다.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트라우마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이 깨끗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혜신 박사는 말한다. 또한 사회적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극복의 책임을 물어서는 결코 온전한 치유가 불가능하다고도 이야기한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개인적 질환”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서 서로의 이웃이 되어야 견뎌지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인데, 누구에게나 타인을 치유할 힘과 의지가 존재하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치유자가 돼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미와도 무관하지 않다. 진은영 시인은 “사회적 치유란 정확히 민주주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타인에게 마음을 쓰고 자기의 마음을 건네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시작”임을 역설한다. 지금도 광화문광장에서, 안산문화광장에서 누군가는 고통에 맞서, 유가족을 외면하는 정부에 맞서 견디고 있다. 이들이 쭉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저 잊지 않으면 된다. 기억하면 된다. 흔들리는 노란 리본을, 우리 곁에 머무는 천사들을.
트라우마란, 견디며 살아갈 상처이지 극복이 되는 상처가 아닙니다
트라우마란 아픈 만큼 파괴되는 거예요. 물론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 중 극소수는 트라우마 이후에도 성숙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이들 내면의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상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내상으로 남아요. 자기 존재보다 더 큰 상처를 홀로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죠. 트라우마란, 견디며 살아갈 상처이지 극복이 되는 상처가 아닙니다. (중략) 삶이 전반적으로 깨어지는 것이라는 맥락에서는 같아요. 스트레스는 개인적인 적응력 등에 따라서 예후가 다를 수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트라우마라는 것은 통제 가능한 영역 바깥에 있는, 인간의 의지나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 사회에 재난, 재앙이 늘어난 거예요.(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