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비밀. 어느 것이 인간을 무너뜨리는가. <허즈번드 시크릿>은 비밀을 지키지 못한 남편과 호기심을 참아내지 못한 아내가 그 대가로 지옥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온 것처럼, 얄팍한 편지 한통이 가족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놓는다. 밀폐용기 타파웨어를 판매하는 세실리아는 든든한 남편 존 폴과 귀여운 세딸을 얻은 행복한 주부다. 어느 날 세실리아는 다락에서 존 폴이 오래전에 써둔 편지 한통을 발견한다. 봉투엔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보라’는 문구가 써 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세실리아는 출장간 존 폴에게 전화를 건다. 존 폴은 침통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일정을 앞당겨서까지 무리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존 폴의 괴이한 태도에 더욱 이상함을 느낀 세실리아는 결국 편지 봉투를 뜯고 만다. 편지엔 그의 끔찍한 과오가 적혀 있다.
사촌과 사랑에 빠진 남편에게 충격을 받은 테스, 어린 딸 자니를 비명에 보낸 레이첼까지 그 편지로 인해 세실리아와 한데 엮인다. 상심한 테스는 친정으로 돌아오고 그녀가 처음 사랑한 남자였던 코너를 다시 만난다. 레이첼은 자니가 그리워 오래된 비디오를 보다 자니가 코너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니의 살해범으로 쭉 코너를 의심해온 레이첼은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한번 이상한 데서 꼬이기 시작한 삶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평범한 여성들을 통해 사랑과 배신, 죄의식과 용서라는 묵직한 테마를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밀봉된 편지의 존재가 주는 불안감은 세실리아가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시무시한 속도감으로 바뀐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전개된다. 하지만 뒤엉킨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이것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임을 허망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다. 운명과 우연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인간은 결국 무력한 존재인 것이다.
세실리아에겐 비윤리적인 일을 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
존 폴은 이사벨을 ‘슬프고도 화가 나는’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존 폴은 샤워를 하면서 운다. 존 폴은 섹스에 흥미를 잃었다. 존 폴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모든 사실이 이상하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저변에 있는 건 실제론 불쾌하지 않았는데, 세실리아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실리아는 차 시동을 끄고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긴 뒤 안전벨트를 풀었다. “가자.” 에스터에게 말하고 차 문을 열었다. 세실리아는 자신이 왜 지금 잠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알았다.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옳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세실리아에겐 비윤리적인 일을 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 두 악 중에 작은 악을 행하는 거다. 세실리아에겐 명분이 있다. 오늘 밤, 아이들이 자러 가면 세실리아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해치울 거다. 그 망할 편지를 읽어보는 거다.(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