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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긴장과 이완의 묘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5-05-25

<간신> 주지훈

“사극은 기피하게 되더라.” 순간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의 세자 충녕과 노비 덕칠, 1인2역을 하면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주지훈이 떠올랐다. 군 제대 복귀작이었으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고 지레 그 후로 사극을 피한 게 아닌가 싶어 재차 물었다. 사극 연기를 경험해 본 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건지. “흥행 문제와는 좀 다르다. 사극은 힘이 배가 든다. 매 신 일정 궤도에 올라서 가야 하는데, 그 감정을 조율하는 게 쉽지가 않다.” 말이 그렇지 ‘다음 영화 할래?’라는 민규동 감독의 문자 한통에 주지훈은 흔쾌히 긍정의 답변을 보냈다. 따지고 보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키친>(2009), <결혼전야>(2013)까지 함께했으니 주지훈은 수필름과 지금까지 네 작품을 함께한, 수필름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웬걸, 주변 사람들은 ‘수필름의 노예’라고 하더라. (웃음)”

<간신>에서 주지훈은 연산군의 최측근으로 무한한 권력을 탐하여 권세를 누리는 간신 임숭재를 연기한다. 엄연한 계급이 있는 시대, 왕이 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왕의 비위를 맞추어 왕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검은 속내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저 왕처럼 놀아보고 싶어’ 왕의 흉내를 내 패악을 일삼고 주변을 기겁하게 만드는 그는, 왕이 ‘없는’ (왕이 미쳐 날뛰기 때문에)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재미있는 인물이다. 자기는 충언을 한다고 해도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간언이 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서 다른 인물이 될 수도 있는 복잡한 사람이다.” 왕의 총애를 얻은 그는 자신의 아버지 임사홍(천호진)과 함께 난폭한 정치와 여색으로 폭정을 일삼던 연산의 행동을 옆에서 쥐락펴락하고 부추기는 데 사력을 다한다. 그 결과, 왕의 신임을 얻어 왕에게 공납할 여인인 ‘운평’들을 색원하는 ‘채홍사’로 발령을 받고 권력의 칼을 휘두른다. “실제 인물이 있는 데다 감독님이 주신 레퍼런스가 많았다. 하지만 디렉션 때는 180도 달라지더라. 전체적인 이미지를 잡으라고 하신 거지만, 골키퍼인 나에게 자꾸 공격수인 호나우두 역을 주고 이미지를 직접 찾으라고 하시는 격이니…. (웃음)”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은 민규동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 그는 감독이 ‘아’를 ‘어’라고 말해도 알아서 ‘아’를 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옆에서 지켜본 김강우의 표현에 따르면 주지훈은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알고 행하는 영리한 상대, 마음껏 발산해도 그걸 다 받아주는 스마트한 배우”다. 어릴 적부터 친구 관계이자 왕으로 모시는 연산군에 대한 집착과 연민, 아내의 죽음마저 방치하고 권력을 위해 왕에게 매달리는 자신의 아버지 임사홍에 대한 애증, 연산군의 상처를 이용해 권세를 얻은 장녹수(차지연)와의 기싸움, 그 사이에서 왕에게 복수를 꿈꾸며 접근한 베일에 싸인 여인 단희(임지연)와의 절절한 애정까지. 주지훈이 연기하는 임숭재는 동선이 자유로운 연산군과 달리 꽉 짜인 틀 안에서 자신을 견고하게 다져야 하는 캐릭터였다. 촬영 신만 무려 128신에 이른다. “이 영화의 복잡한 사건, 인물들이 모두 임숭재의 시선으로 보여진다. 그 시선에 맞춰서 이미 정확하게 동선이 주어져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고 잘 움직여야 했다. 감독님이 가진 명확한 앵글이 있었고 그 결과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감독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랐다.” 덕분에 그는 이번 작품을 기술적으로 가장 많은 공부를 한 작품이라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부담은 컸지만, 현장에서의 주지훈은 주지훈 그대로였다. 장난도 잘 치고, 늘 떠들썩하고, 모니터도 잘 안 보고, 쉬는 시간엔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하는 모습 등 누가 보면 무책임해 보이지만,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이런 태도가 주지훈의 충전 방식이다. “혼자 있는 시간, 대본을 죽도록 연습하고 모든 걸 마스터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현장에 와서는 그렇게 긴장을 푼다. 나는 그런 이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건데, 나한테는 이게 맞는 것 같다. 민규동 감독님과는 영화 데뷔작을 함께했으니 여전히 그런 나를 ‘어린 배우’로 보는 것 같긴 하다. (웃음)” 지난해 <좋은 친구들>(2014)로 의리와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 인철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에 대해서도 좀더 명확하게 자신감을 확보했다고 한다. <간신>의 복잡하고도 명쾌한 눈빛도 그중 하나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다. 헛되게 살지 말고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에너지를 쏟고 싶다. 강우 형도 그렇고, 형들 보면서 많이 배운다. 내가 지금의 단계를 넘으면 선배들처럼 되겠구나 하는 마음. 그래서 지금은 좀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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