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셜포비아>(2014)를 보면 사건이 음모로 발전하는 순간을 볼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일으키던 레나라는 유저가 자살한 채 발견된다. 시체를 가장 먼저 목격한 남자들(레나와 직접 만나러 가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던)은 곧 레나가 당했듯 신상이 털리는데, 그들은 레나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유를 모르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가 진실 규명과 무관하게 이야기의 중심에서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을 추동한다.
인간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자기표현, 자기실현의 욕구가 녹아 있으며, 때로 그 욕망은 범죄자의 욕망과 아주 미세한 차이를 지닌 공통유전자가 있다는 게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의 생각이다. 오쓰카 에이지는 1989년 일본을 뒤흔든 연속 소녀 유괴 살인사건(일명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의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재판에 관련된 경험이 있는데, 피고인이 미완성이거나 불완전한 이야기를 공책이나 컴퓨터에 남긴 것을 보았고, 이것이 다른 유사 범죄자들의 경우와도 공통되는 사항임을 발견했다. 오쓰카 에이지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자기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불완전연소한 결과물이 그런 범죄의 원인 중 하나는 아닐까 추론한다.
만화 원작자이자 서브컬처 평론가로 소개되는 오쓰카 에이지는 1980년대에 만화 잡지 <코믹류> <프티 애플파이> 등에서 편집자를 맡았고 편집장까지 역임했다. 한국에도 출간된 <다중인격 탐정 사이코>를 비롯한 만화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에서의 소설의 흐름과 사회의 흐름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대담집인 이 책은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만화, 그리고 오타쿠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스토리 작가와 만화가, 편집자가 어떻게 분업해 만화를 완성해가는지부터 창작과 프로파간다의 문제(일본의 역사 인식과 일본의 창작물간의 상관관계) 등도 다룬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순문학 논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은 문화나 예술이라는 높은 사회적 평가를 통해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쓰카 에이지의 진단이다. “출판사가 만화 잡지의 높은 매출에 얹혀가는 형태로 문예 잡지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화되자, 이미 내구 연한이 끝난 문학을 연명할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순문학 논쟁이었다. 이 책은 순문학 논쟁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다소 급하게 이야기를 맺지만, 한국에서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소설과 순문학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