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와 문화에 초점을 맞춰 지역 특정적인 단편들을 조명하는 유럽단편영화제가 5월15일(금)부터 25일(월)까지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 KU시네마트랩에서 열린다. 제3회를 맞는 행사의 주제는 ‘유럽, 50개의 시선’이다. 유럽의 29개국, 48개 도시에서 온 50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된다. 프로그램은 사랑, 청춘, 가족 등 소재별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개막작은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마틸드>다. 소녀 마틸드는 선생님의 강의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산만한 분위기 때문에 집중이 쉽지 않다. 친구들이 어울리는 쉬는 시간이나 하굣길에도 그녀는 늘 혼자서 무언가에 열중한다. 그녀가 한 행동의 의미는 뒤늦게 드러난다. 영화가 품고 있는 작은 반전은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깨달음을 준다. ‘삶을 꿈꾸다’ 섹션의 <파란 교복>은 터키의 한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간다. 교실에서는 연대에 관한 수업이 한창인데 알리는 창밖만 바라본다. 창밖에는 알리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빗속에서 학교 앞에서 공책과 연필 따위를 팔고 있다. 학교 안팎의 두 소년을 통해 수업(이론)과 실천의 괴리감을 보여준다. ‘경계 위에서 춤추다’ 섹션의 <자코보>(2012)는 누군가를 총살하도록 명령받은 군인 자코보의 갈등을 그린 스페인영화다. 자코보는 자신의 총구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친 뒤 그를 쏠 수 없게 된다. 딜레마에 또 다른 딜레마를 새겨넣은 묵직한 드라마를 통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섹션의 <당신을 통해>는 한 여자가 마트에서 장을 본 뒤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네덜란드 애니메이션이다. 마트로 향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림자로 처리하는데, 그림자를 점성이 있는 끈끈한 것으로 표현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길 위의 사람들의 감정을 묘사하고, 이들간의 관계를 만들어낸 것이 재미있다. ‘또 다른 시선’ 부문의 <세비야>는 커플과 동행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네덜란드영화다. 세 남녀의 여행이 두 남녀의 여행으로 바뀌는 이후 상황을 플래시포워드로 보여주면서 두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가늠해보게 한다. ‘가족의 발견’ 섹션에는 폴란드의 <호산나>, 네덜란드, 터키의 <말과 나이팅게일> 등 할머니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호산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와 말괄량이 손녀가 단둘이 보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이들의 대화가 논쟁적이고 수다스럽다면 <말과 나이팅게일>의 할머니와 손자는 고요하고 진중하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에서 하룻밤 묵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짧은 교감의 순간을 담는다.
‘푸르른 청춘’ 섹션의 노르웨이영화 <파티>는 광란의 파티가 벌어진 뒤의 잔해를 따라간다. 2층 저택에서 벌어진 졸업파티 현장에서 한 남자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다. 스톱모션 기법을 바탕으로 결정적 순간에 파티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빠르게 훑는다. 클럽음악을 바탕으로 한 사운드와 원신 원컷의 현란한 카메라워크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우리, 사랑하다’ 섹션의 영국 작품 <아이라인>은 사이먼이 카페에서 우연히 한 커플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이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카메라와 사운드의 활용이 특징적이다. ‘탈출하고 싶은’ 섹션의 <외출>은 우울증에 걸려 하루종일 집 안에서 우두커니 담배만 피우는 엄마와 딸의 특별한 외출을 다룬 노르웨이영화다. 억압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집 내부의 인테리어와 아파트의 외관이 주는 위압감으로 표현한 것이 섬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