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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내 아들은 내 거야!

<올가미> <바람난 가족> <식객>과 임성한 드라마 등으로 살펴본 시어머니의 도(道)

<바람난 가족>

수십년을 살면서 제법 많고도 다양하고도 강력한 인간 폭탄을 만나왔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부류가 있으니, 바로 시어머니다. (이젠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날 것 같다.) 그래도 남의 시어머니 욕은 많이 들었다. 돌 지난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갔던 동생이 돌아와 울면서 하소연했다. “아기가 어쩜 이렇게 볼품없이 마르고 못생겼냐는 거야. 그게 손녀한테 할 소리야? 엉엉.” 근데 동생아… 사실이잖아. 동생의 시어머니는 객관적이었다. 조카 얼굴이 그분 아들 판박이고 그분 아들 얼굴은 그분 판박이기는 했지만.

한번은 결혼한 친구가 공포에 질려 하소연했다. 그간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어머니의 폭력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시댁을 먹여살리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남편 패는 걸로 풀곤 했던 그 애의 시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손아래 시누이들도 때리기 시작했는데, 며느리를 새로 들인 다음부터는 참고 살다가, 결국 성질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시고모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질질 끌고 다니더라고. 무서워, 엉엉.” 나는 친구를 달랬다. “너만 안 맞으면 되지 뭐.” 친구는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어머님이 이번에 주상복합 100평짜리 분양받았대. 그 집에서 노인네 둘이 살 작정이겠냐고. 나도 머지 않았어, 엉엉엉.” 며느리에게 공포와 더불어 원룸 건물 네동을 선사한 친구의 시어머니는 부자였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가정의 달 오월이 되니,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제법 꼴을 갖추며 올라가고 있는 친구의 장래 보금자리 주상복합 건물을 보니(친구는 집값이 폭등해 시어머니가 분양권을 팔기를 바라고 있지만 동네 주민으로서 단언컨대, 가망 없다.) 문득 궁금해졌다. 태어날 때는 모두 똑같은 딸이었을진대 어찌하여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상극의 방향으로만 진화하는 걸까. 시어머니를 만날 일이 없으니 시어머니가 될 일도 없지만 쓸데없이 시간만 많고 할 일은 없는 내가 한번 고민해보았다.

<올가미>

그래서 새삼스럽게 고른 영화가 <올가미>였다. 고부(윤소정과 최지우)가 나란히 어색한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서울 관객 14만명이라는 별 볼 일 없는 흥행을 기록했지만, 인터넷이 없던 암흑의 시절,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시어머니의 만행을 공공의 장으로 끄집어낸 영화 <올가미>, 그리하여 시어머니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자리잡은 불멸의 영화 <올가미>. 옛날엔 이상했지만 지금 보니 그 시어머니, 참으로 박력 넘쳤다.

아침 댓바람부터 “잘 잤어?” 대신 “수진이, 잘 잤어?”라는, 여자로서 용서하기 힘든 느끼한 대사(“오빠가…”와 동급)를 남발하는 아들을 풍만한 가슴으로(그 가슴을 선보이는 순간 최지우는 기죽지우) 감싸안는 시어머니는 주먹으로 거울 치기, 국자 대신 식칼로 국물 휘젓다가 간 보기 등을 구사하는 화끈한 여자다. 그녀와 며느리의 문제는 단 하나, 여자는 둘이요 남자는 하나라는 것.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는 넘치니 누군가는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바람난 가족>의 시어머니(윤여정)는 1 대 2의 공식을 이루되 결과가 어찌되든 본전은 건질 수 있는 1의 자리를 택한다. 시어머니는 하나인데 남자가 둘, 남편과 아들 대신 남편과 애인. 과부가 되면 합가를 고민하는 시어머니들과 다르게 남편 장례 치르자마자 애인과 해외로 떠나주는, 이 땅 며느리들의 히로인이다. 하지만 부의금은 아들, 며느리 손도 못 대게 하고 몽땅 챙기는 걸 보면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부의금, 그거 민감하더라고요.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라고 하니 <식객>의 육개장 편이 생각난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닦달해서 좋은 소고기와 고사리 등을 찾아오라고 시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그 재료가 몽땅 들어가는, 제대로 된 육개장 끓이는 비법을 전수하고 싶었다는, 화해와 감동의 에피소드. 하지만 장례 치르면서 육개장 수백 그릇을 손수 끓일 며느리가 보기엔 섬찟한 에피소드. 시어머니들이란 왜 그토록 며느리가 차리는 밥상에 집착한단 말인가. 솔직히 장례식장 도우미가 끓이는 육개장이 우리 엄마 육개장보다 낫던데.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가 올 때마다 맛의 고장 전주의 그 많은 산해진미를 놔두고 삼시세끼 맛없는 밥상을 차려대곤 했다. 할머니가 돈 떨어질 때마다 쳐들어오는 주말은 울적한 주말, 평일에 먹는 것도 모자라서 주말에도 엄마 밥을 먹어야 해, 엉엉. 할머니는 음식도 잘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결과야 어찌됐든 과정(며느리만 죽도록 고생하는)을 중시하는, 아름다운 시어머니였다.

할머니는 고향에서 고모하고 함께 살았지만 우리 식구가 친가에 가면 새벽같이 일어나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밥상 가득 올리곤 했다. (그래서 돼지고기인 줄 알고 수육을 먹었던 나는 여섯살 나이에 개고기에 중독되었다….) 숱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고 주장하지만, 며느리 집에선 시어머니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딸 집에선 딸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압구정 백야>

이 답 없는 질문에 완벽한 해답을 내놓은 이가 있으니, 드라마 작가 임성한이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건 누가 봐도 거짓말이야, 하지만 며느리가 진짜로 딸이라면? 이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을 능가하는 발상의 전환, 드라마 <하늘이시여>와 <압구정 백야>이다. <하늘이시여>와 <압구정 백야>는 어린 시절 딸을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가 전자는 엄마의 고의로, 후자는 딸의 고의로, 친딸을 며느리로 맞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결과는 시어머니가 진심으로 며느리를 딸처럼 아끼는, 세상에 다시 없는 고부지간.

고백하건대 <압구정 백야>를 놓치면 밤 11시30분에, 그것도 놓치면 다음날 오후 4시30분에 채널을 예약해뒀다가 눈에 불을 켜고 재방송을 보는 나는, 다음 달부터 뭘 보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임성한 드라마가 진짜 사연을 올리는 다음 미즈넷 며느리방보다는 정신 건강에 좋던데. 막장이라고 욕먹어도 드라마가 현실보다 건전하다.

치매에 걸려도 구박은 잊지 않는다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답게 만드는 두세 가지 양분

<님은 먼 곳에>

칠거지악

조선 시대에 며느리가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는 칠거지악 중 하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었다. (왠지 다른 여섯 가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들이 바람을 피워도(<님은 먼 곳에) 시어머니가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건 다 애가 생기지 않아서다. 큰소리를 치다 못해 <님은 먼 곳에>의 시어머니는 씨 받아 오라며 며느리를 베트남전으로 보내는데…. 아들 얼굴이 엄태웅인 건 알아도 며느리 얼굴이 수애인 건 모르는 시어머니다. 그리고 베트남엔 정경호가 있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혼수

원룸 네동을 받고는 호쾌하게 직장을 때려치웠지만 시어머니에게 머리채 휘어잡힐까 무서워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했다, 혼수로 꿀리면 안 된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시어머니(김지영)는 15년에 걸친 치매에도 불구하고 의사 아들 병원 차려달라고 며느리(배종옥)를 구박하는 것만은 잊지 않고, <박쥐>의 시어머니(김해숙)는 맨몸으로 거둔 며느리 태주(김옥빈)를 식모 내지 장난감 내지 애완견 취급하면서 희희낙락 잘만 산다. 그래서 괜히 몽유병을 가장하여 밤마다 맨몸으로 집을 나가는 태주, 맨몸으로 쫓겨나는 연습을 하는 건가. 요즘 내 친구는 맨몸으로라도 쫓겨나고 싶다고 한다. 노부부 둘이 살기엔 너무 넓은 100평짜리 주상복합 완공이 멀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2: 가문의 위기>

다른 며느리

사람이 큰소리를 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 많은 샐러리맨이 할 말이 생각 안 나 큰소리를 참고 살겠는가, 대안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시어머니의 경우, 대안은 다른 며느리다. <가문의 영광2: 가문의 위기>의 홍덕자 여사(김수미)도 그렇다. 조폭 가문에 검사 며느리를 맞이하자니 애로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만만한 둘째 며느리가 있잖아. 그러니 며느리들은 서로의 대안이 되지 않도록 돕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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