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차대전의 패배로 식민지를 모두 잃고 거대한 전쟁배상금을 빚져 만신창이가 된 채 대공황 시대를 맞았다. 나치가 급부상한 배경이다. 군사적 전체주의와 순혈주의, 그리고 극우 민족주의는 2류 시대를 지나는 공동체의 풍경이며 열패감의 거울상이었다. 더 우월한 것을 쫓기보다는 더 열등한 것을 찾아 위안받는 쪽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훨씬 편리한 치유방법이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네오나치즘이 제1세계의 저소득층과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급작스럽게 노출된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떠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 등장한 ‘일베’는 변형 나치즘에 가까워 보인다. “여자들이 지나치게 보호받고 있다. 남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 무능한 여자들이 사회의 요직을 가져가려 한다. 여자는 남자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이다. 이 나라는 우리 남자들의 것이다!” 차별이 공상적 피해의식으로 전화되는 현상은 하나의 공식과도 같다. ‘여자’를 ‘유대인’으로, ‘남자’를 ‘독일인’으로 바꾸면 빼거나 보탤 단어가 하나도 없이 반유대주의에 관한 서술이 되지 않는가? 군사 정권에 대한 향수와 이주 노동자를 향한 혐오의 시선 역시 나치즘과 겹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일베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네오나치나 스킨헤드처럼 세계적인 극우 세력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결과제가 있다. 1세계의 소외된 극우 세력은 약자의 무조건적 척결이라는 일관적 맥락을 깨지 않고 스스로를 주류 세계의 질서에 묶어둘 막강한 공상적 수단이 있었다. ‘아리안인종’이라는 허구의 인류학적 범주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우월종으로서 모든 백인은 동일시되고 열등한 유색인종을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생학적 타당성을 얻는다. 이것은 일베의 사상이 결여한 요소로서, 그들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극우 세력으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세상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열등한 유색인종으로서, 일베는 스스로의 완전 박멸이라는 이론적 구멍을 메워야 진정한 보편 극우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자신의 박멸을 수긍하는 동시에 회피하는 이론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반세기 전 커트 보네거트가 소설 <마더 나이트>를 통해 정체성 미분이라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소설에는 백인들 사이에서 활약하는 흑인 나치당원이 등장하는데, 그는 유색인종은 열등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흥분해서 외친다. “조만간 우리 유색인종들이 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오. 유색인종은 수소폭탄을 갖게 될 거요. 그리고 당장에 그것을 사용할 것이오. 중국에다 말이오.” “… 유색인종의 수소폭탄을 유색인종에게 떨어뜨린다고?” 그러자 흑인 나치당원은 혀를 차며 대답한다.“중국 놈들이 유색인종이라고 대체 누가 그럽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