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힘든 선택들>은 자서전이라고 되어 있지만, 2008년 민주당 최종 경선이 끝난 뒤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비밀회동부터 시작한다. 대통령 선거 유세를 도와달라는 오바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부모의 결혼과 자신의 탄생을 이야기하느냐? 그렇지 않다. <힘든 선택들>은 2008년부터 시작하는 책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라기보다는 미국을 향해 보내는 기나긴 편지 혹은 보고서라고 불러야 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로 백악관에 입성했다는 과거는 거의 느낄 수 없다. 책에는 사진이 다수 실려 있는데 그녀의 옆자리에 가장 많이 선 남자는 빌 클린턴이 아닌 버락 오바마이고, 엄밀히 말해 이 책의 그녀는 누구의 ‘옆’자리에 서 있지 않다. 모든 사진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사진도 여기 실렸다. 2011년 5월1일,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4년 임기에서 가장 상징적이자 극적이었던 사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는 장면.
<힘든 선택들>은 2009년부터 4년간 미국의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방문한 수많은 국가에 대해, 그리고 그 나라와 관련된 문제를 두고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보아야 했던 경험에 대해 800여 페이지에 걸쳐 쓰고 있는데, 그 국가들과의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가장 앞부분은 아시아에 대한 글이고, 취재 중에 북한 군인에 붙들려 투옥된 두 미국 기자의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이 애쓴 이야기에 바로 이어서 “유감스럽게도 더 많은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언급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더이상의 도발 행위를 막기 위해 강력한 무력 시위를 했고(한•미 합동군사훈련),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을 청와대에 초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필요할 때 한국의 편에 서준 것에 감사를 표했고, 그가 종종 그러듯이,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자신의 성공을 한국의 성공과 연결시켰다. 한국은 한때 북한보다 가난했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경제 발전에 성공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남긴 유산을 상기시켰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힘든 선택들>의 독서는 단순히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팩트 전달에 머무르기 어렵다. 다른 어떤 나라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2014년 초에 마무리한(미국에서 2014년 6월10일 출간) 이 책의 말미에 2016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묻는 말에 “내 대답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읽어가다보면 이 책을 쓰기로 한 단계에서 이미 모든 결정은 내려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