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내가 죽인 동물들>

부산에서 개최되는 가장 유명한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있기까지 부산을 기반으로 한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BISFF)는 바로 그런 영화제 중 하나다. 한국단편영화제로 출발해 올해로 32회를 맞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4월24일(금)부터 28일(화)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다.

올해부터는 통합되어 있던 경쟁부문을 국내경쟁과 국제경쟁으로 세분화했다.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던 국내영화들을 조명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개막작은 스웨덴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헌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눈길을 끄는 다큐멘터리 <이름 없는 도시의 새벽>(2014)과 마지막 상영을 맞은 스페인 단관 극장을 배경으로 급변하는 영화계에 대한 성찰을 담은 나쵸 푸엔테스의 <마지막 상영>(2014)이다.

영화를 둘러싼 현안 다루는 클로즈업 섹션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매년 새로운 주빈국을 선정해 다양한 지역의 영화를 만날 기회를 마련해왔다. 프랑스, 중국, 스페인에 이은 올해의 주빈국은 스웨덴이다. 스웨덴 특별전은 스웨덴영화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스웨덴 파노라마, 스웨덴 거장들의 작품을 다시 보는 스웨덴 클래식, 스웨덴 웁살라단편영화제와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스웨덴 코미디 부문으로 구성된다. 스웨덴 파노라마 부문 상영작 <아브라카다브라>(2008)는 마술사를 꿈꾸는 25살의 괴짜 청년 토마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토마스는 어머니를 상대로 마술쇼를 벌이다 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을 만드는 사고뭉치다. 그곳에서 옆집에 사는 간호사 모니카를 만나는 이야기다. 스웨덴의 독특한 유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스웨덴 코미디 부문 상영작 <지난 여름 내가 죽인 동물들>(2012)은 6개 챕터로 나눠 아들 레오와 아버지가 지난여름 다른 이유로 죽인 동물들의 목록과 그에 따른 서로 다른 죄책감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어린 레오가 돋보기를 이용해 개미를 죽이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들의 호기심 어린 행동에 아버지는 근심한다. 레오의 나이 때가 도덕적인 관념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오의 아버지는 자신 역시 잘못 형성된 도덕적 관념의 당사자임을 점점 깨닫게 된다. 스웨덴 클래식 부문에는 잉마르 베리만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카린의 얼굴>(1986)은 베리만이 자신의 어머니 카린을 추모하는 성격의 작품이다. 어머니가 죽기 직전 찍은 얼굴 사진이 담긴 여권 사진에 대한 줌인으로 시작해 그녀의 처녀 시절과 결혼, 출산, 병을 앓았던 노년의 얼굴을 겹쳐놓는다. 소박한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이 베리만의 인장처럼 찍혀 있다. 그 밖에 스웨덴의 거장 얀 트로엘의 실험적인 단편과 <유, 더 리빙>(2007)으로 알려진 로이 안데르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내년 주빈국인 오스트리아의 영화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 프리퀄 오브 오스트리아 섹션도 마련된다. 사적 공간과 공적 영역을 주제로 내년 상영작을 미리 만날 기회다. <아버지와 아들>(2014)은 빈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홀로 사는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무를 이용한 난방의 장점을 설명하는 등 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지만 아들은 과묵하기만 하다. TV가 유일한 위안인 중년 남성의 외로움이 잘 담겨 있다. <페이퍼워크>(2012)는 대사 없는, 그러나 소리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다. 제지공장과 사무실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교차된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편집의 물질적인 흐름이 더욱 시선을 끈다. <페이퍼워크>를 만든 사샤 피어커 감독은 영화제 기간 중 내한해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할 예정이다.

영화를 둘러싼 현안에 대해 주목하는 클로즈업 섹션에서는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상영과 함께 필름아카이브의 미학적 활용과 현대 다큐멘터리의 경향과 관련된 컨퍼런스가 마련된다. <낮이 밤을 눌렀다>(2013)는 이상한 방식의 구술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시작하면 누군가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다. 영화 속 누군가의 응시에 익숙해질 즈음 화면 속 인물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연이어 화면을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건네는 몇몇의 인물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가 특수한 것은 그들이 프랑스 오를레앙 교도소의 수감자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리 없는 절규>(2014)는 베이징의 쓰레기처리장을 떠돌아다니는 개들의 동선을 쫓아가는 다큐멘터리다. 개시장에 팔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운명에 처한 떠돌이 개들을 개의 시점과 객관적인 시점을 넘나들며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이 많아 관람에 유의가 필요하다.

<내 친구 니체>

타이, 인도네시아, 중국의 영화들

상대적으로 유럽에 치우쳤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마련된 아시아 단편 섹션에서는 타이, 인도네시아, 중국의 영화 6편이 소개된다. 인도네시아의 <물고기 손질>(2014)은 화려한 전통혼례의 순간과 결혼 후 홀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여성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1975)을 연상시키는 건조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케첩>(2012)은 케첩을 만드는 부모 밑에서 자란 감독의 어린 시절 기억을 따라가는 영화다. 케첩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당시 중국의 폭압적인 시대상과 감독 개인의 성장통을 엮어낸 수작이다.

패밀리 단편 섹션 상영작 <내 친구 니체>(2013)는 읽기 능력 부족으로 낙제의 위기에 처한 루카스가 어느 날 쓰레기 더미에서 니체의 책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루카스가 책을 발견하는 순간을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유인원이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된 순간처럼 패러디한 장면이 유머러스하다. <줄줄이 꿴 호랑이>(2014)는 권문희 작가의 동화 원작을 프랑스 감독이 영화화한 애니메이션이다. 홀어머니를 한숨짓게 했던 게으른 아들이 어느 날 마을의 똥이란 똥은 죄다 모아서 그 위에 참깨를 뿌리자 곧 참깨 나무가 열리고 기름이 떨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뤘다. 위트 넘치는 상상력과 표현법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을 보는 느낌도 독특하다.

커튼콜 섹션의 <아이샤> 놓치지 마세요

최근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커튼콜 섹션에서는 2014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아이샤>(2014)를 만날 수 있다. 콩고 출신의 17살 소녀 아이샤 머웨이가 프랑스 이민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는 시퀀스가 영화의 전부다. 유색인종인 어린 소녀의 신체와 이를 설명하는 백인 남성의 건조한 내레이션의 대비를 통해 이민자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