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과 일용직을 전전하는 일범(김인권)은 친구에게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관 ‘떴다방’을 소개받는다. 일범은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강매하는 게 영 못마땅하지만 밀린 월세와 아픈 딸을 생각하며 참고 일한다.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고 말하면서도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점장 철중(박철민)의 악랄함을 목격하면서도, 자신이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즐거워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더욱 극진히 그들을 모신다. 차차 실적을 높이는 가운데, 일범은 검사 아들을 뒀지만 쓸쓸히 노년을 보내던 옥님(이주실)에게 남다른 정을 느끼고 성심을 다한다.
<약장수>는 앞날이 캄캄한 젊은 아버지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날들을 그렸다.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하면서도 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속 깊은 딸은 병을 앓고 있고, 아내는 가난한 처지를 책망하기만 한다. 가난한 가장의 무게와 더불어 사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떴다방에 드나드는 낙으로 사는 노년 여성들의 외로움도 따라간다. 가족과 떨어져 적적한 어머니들에게 아들보다 더 살갑게 대한다는 나름의 구실과 값싼 물건을 폭리를 취해 팔려는 목적이 뒤섞인 ‘떴다방’의 이중적인 존재처럼, <약장수>에는 하루 평균 4.7명의 노인이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죽어가는 푸석한 시대와 그 가운데 가까스로 효도가 실천되는 절절한 대목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신파의 짤막한 온기는 극의 흐름을 뒤집지 않고 뒤에 따라올 냉혹함을 강조하는 것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 (상징적으로) 굉장히 잔혹한 클라이맥스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영화가 맨 처음부터 특유의 서늘함을 제대로 붙들어온 결과다.
서민의 생활고, 독거노인의 고독사 등 한국 사회의 실체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 이야기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방불케 할 만큼 올곧고 투박한 한편,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한 배우들의 연기는 내내 생생하다. 오랫동안 유사한 캐릭터를 거치며 한국영화의 독보적인 얼굴로 자리매김한 김인권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구현했다. 박철민은 여러 자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언변을 통해 떴다방의 쇼맨십과 폭력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 힘을 실었다. <약장수>는 많은 영화에서 라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조치언 감독의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