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건맨>은 고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과거에 저지른 죄가 8년의 시간을 건너 찾아온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며 살인과 폭력에 가담했던 짐(숀 펜)은 이제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참여해 속죄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죄의 대가는 엄연해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과거 동료의 뒤를 파헤치던 짐은 사랑했던 여인이 동료의 아내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자크 투르뇌르의 <과거로부터>(1947)가 마이클 커티스의 <카사블랑카>(1942)를 만난 이야기다. 얼핏 보기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조합은 아니다. 누아르의 스타일을 따르자니 로맨스의 진심이 의심받을 테고, 순정을 지켰다가는 스릴러의 흐름이 나빠질 판이다. 팜므파탈 캐릭터가 있었더라면 빠져나갈 꾀라도 부릴 텐데, 연인이 길을 막고 있어서 그것도 힘들다. 액션영화에 능한 촬영감독에서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피에르 모렐이 선택한 노선은 전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게끔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짧다. 짐은 살기 위해 무조건 앞으로 내달려야 한다. 과거의 기억이 고통스러워도 뒤를 돌아보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중년의 남자배우들이 액션 캐릭터로 거듭 태어나는 게 유행이 된 지금, 모렐이 리암 니슨과 존 트래볼타에 이어 내놓은 카드는 숀 펜이다. 숀 펜 외에도 하비에르 바르뎀, 레이 윈스턴, 이드리스 엘바 등 선이 굵은 배우들이 가세한 결과물은 기본적으로 가볍지 않다. 문제는 그 무게에서 발생한다. 달려야 하는데 발이 그 무게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거다. 웃통을 여러 번 벗어젖힐 정도로 펜이 잘 가꾼 몸매를 과시하긴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몸매로 통쾌한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각본에 직접 참여한 펜은 어쩌면 액션영화보다 심각한 스릴러를 의도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영화의 몇몇 부분은 1970년대 정치 스릴러에 어울릴 것들이며, 뇌의 질병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짐은 예전의 신경질적인 인물들과 닮았다. <더 건맨>은 전체적으로 뒤뚱거린다는 인상을 준다. 요즘 관객이 이런 유의 영화에서 액션의 쾌감과 흡족한 결말을 원한다는 것쯤을 모렐이 몰랐을 리 없다. 다만 그로서도 어긋난 조각들을 제대로 끼워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렐의 데뷔작 <테이큰>(2008)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결함과 상관없이 오로지 스트레이트한 액션을 추구했던 작품이다. 그 미덕을 되살리는 게 그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