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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TVIEW] 영리한 포맷의 승리

<너의 목소리가 보여>, 미스터리 풀이하듯 음악 예능을 꾸미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올해 초에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드라마가 있다. <오리엔트 급행 살인 사건>. 단출하게 2부작으로 기획되어 방영된 특집극이었지만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웃음의 대학>의 재기발랄한 각본가 미타니 고키가 각색했고 다마키 히로시, 마쓰시마 나나코 등 특급배우의 출연으로 일본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일본의 실정에 맞게 각색한 이 드라마는 결국 16%를 상회하는 시청률로 관심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 전설적인 추리소설의 진정한 맛은, 밀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누구인지까지도.

‘음치도 최후의 1인이 될 수 있는 대국민 추리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시작한 음악 프로그램이 있다. 아니,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Mnet에서 방송되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그것이다. 목소리는 듣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잖아, 라는 의문을 가진다면 기초적이고 직관적인 의문이겠지만 일단 제목에선, 제작진은 그걸 노린 것일 테다. 그리고 사실 이 프로그램에선 목소리를 ‘본다’. 메인석에 앉게 되는 초대가수가 있고, ‘음치 판정단’이 있다. 또한 이특, 유세윤, 김범수라는 세명의 진행자가 있다. 이들 앞에 여덟명의 음치들이 자신의 닉네임을 걸고 나타난다. 아니, 사실 0명의 음치와 0명의 실력자가 나타나는데, 이들의 합이 여덟인 게 맞다. 음치 판정단과 초대가수는 이들의 노래를 듣지 않고 음치와 실력자를 골라내야 한다. 비주얼을 보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립싱크를 보고, 그들의 사연을 듣고. 노래는 골라낸 후에 듣는다. 그런데 최후의 단서조차도, 단서만이 사실일 뿐, 그 단서에 대한 출연자들의 코멘트는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방청객의 리액션도 믿을 수 없다. 음치 판정단으로 참여했던 개그우먼 안영미의 외마디가 이 프로그램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대체 여기 뭐하는 곳이야?’

용의주도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지만, 일단 포맷 자체가 영리하다. 매우 영리하다. 음치 판정단도, 초대가수도 각자 자기가 판단한 단서를 가지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린다. 그리고 TV를 보고 있는 우리도 동시에 그 실타래에 달려든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더 많이 엉키고, 엉킬수록 재미는 배가된다. 마치 시청자의 호흡에 맞춘 듯한 편집 또한 효과적으로 보인다. 거기에 묵직한 스토리까지 얹힌다. 성악가의 꿈을 접고 요리사를 하고 있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이야기에 얹히는 실력자의 성악곡.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는 그의 이야기에 오버랩되는 음치의 뮤지컬 넘버. ‘누구의 목소리가 보이십니까’라고 낭랑하게 묻는 진행자. 볼 수 없었던 목소리 사이사이에 꿈마저 볼 수 있다니. 제 점수는요, 올해 1/4분기에선 제일이에요.

+ α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제목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너의/ 목소리가보여, 너의목소리가/ 보여, 너의목소리가보여…. 스타였던 배우 이종석을 톱스타로 밀어올린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떠오른다. 하지만 역시 이 프로그램 제목과의 싱크로율이라면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가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1997년에 발매된 한국 인디록의 전설, 델리 스파이스의 1집에 수록된 이 곡은 앞에 언급한 두줄이 가사의 거의 전부다. 단 두줄의 가사와 반복되는 멜로디의 엄청난 흡인력. 오늘 다시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