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절도를 경고하는 말 속뜻 사랑을 설명하는 말
주석 목욕탕 수건 문구의 진화사(進化史)는 재미있다. 처음에는 ‘○○목욕탕’이라고 쓰더니 곧 ‘가져가지 마시오’로 바뀌었다. 그래도 집어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최근에는 ‘훔친 수건’이란 문구를 새긴 곳이 많아졌다. 마지막 문구는 어떻게 보면 독한 유머지만 다르게 보면 손님제일주의이기도 하다. ‘가져가면 도둑놈’이란 주장이지만 목욕탕 주인이 갖고 있어도 ‘훔친 수건’이기는 매한가지니까. 처음에는 목욕탕 주인의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다음에는 손님에게 간청하다가, 끝내는 손님의 입장에 서버린다.
어째 사랑 얘기 같지 않은가? 수건에 적힌 문구가 일러주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내 마음이야’에서 ‘내 마음을 가져가지 마’로, 다시 ‘뺏어온 마음’으로 소유자가 변하고 있다는 것. 수건은 한 사람이 제 몸에 가장 가깝게 대는 물건이다. 수건과 피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랑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과 가장 가깝게 붙어 있으려고 한다. 아무리 얇더라도 사랑은 가림막을 견디지 못한다.
‘가져가지 마시오’란 말에는 어떤 슬픔이 묻어 있다. 간청의 내용도 그렇지만, 저 말을 끌어가는 운(韻)에도 슬픔은 있다. ‘가~가~마~오’ 사이에 ‘~져~지~시’가 끼어 있다. 입을 크게 벌린 탄식(‘아~’)들 사이에 파찰음(‘ㅈ’)과 마찰음(‘ㅅ’)이 끼어 들었다. 꺼이꺼이 우는 모양이다. 저 말(‘가~가~마~오’ )에서 <공무도하가>가 울려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건너시네. 물에 빠져죽으니, 아아 님을 어찌할꼬.” 저 노래의 구도에 수건을 빼앗긴 목욕탕 주인의 심정을 얹어도 좋을 것이다. 님이여, 그 수건을 가져가지 마오. 님은 그예 집어가시네. 수건은 이미 없으니, 아아 뺏긴 수건을 어찌할꼬.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리움에 관해서라면, 여자들은 여러 개의 작은 방을 두고 있지만, 남자들은 단 하나의 큰 방을 두고 있다고. 여자들이 지나온 사람에 대한 추억을 각각의 방에 저장해둔다면, 남자들은 지금 만나는 사람 말고는 다 망각해버린다고. 나는 그것을 목욕탕 수건에 빗대서 말하겠다. 제 몸에 가장 가까이 했던 것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마음이든 물건이든, 여자들은 모두 챙겨가고 남자들은 죄다 버리고 간다고.
용례 수많은 노래들이 “당신은 왜 허락도 없이 내 마음을 가져갔나요?”라고 묻는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모두 목욕탕 주인이다. 야, 이 수건 도둑아. 너 때문에 맨날 내가 냉탕과 열탕을 오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