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비극들이 폭죽처럼 매일 터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면서 누군가가 ‘한국이 싫다, 이민 가야겠다’고 말할 때마다 속으로 비겁한 회피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게 그나마 슬기로운 삶의 해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요즘 그 생각이 뒤집어졌다. 한국 땅을 도망치고 싶다는 간절함이 울컥울컥 목울대까지 차오르곤 한다. 바로 세월호 때문이다. 절망을 목격한 사건, 사고들이야 부지기수지만, 세월호 문제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 현대사의 정당성을 통째로 익사시킨 저 검은 심연 앞에서,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부조리한 사회가 아이들을 집어삼킨 저 비명의 블랙홀 앞에서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우리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저 서서히 기억을 지우는 것뿐이었다. 피고석에는 책임질 그 누구도 소환하지 못했고, 선체는 바다 속에서 녹슬어가고, 실종자 9명은 여전히 물속에 남아 있고, 구조와 안전 시스템에 대한 담론은 이미 철 지난 유행가가 되었다. 1년 전 잊지 않겠다던 그 수많은 맹세들은 기껏 순간의 부질없는 공수표요, 임기응변의 자기기만이었던가.
유가족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마저 와해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그 인면수심의 ‘배후세력’은 어쩌면 우리일 것이다. 광장을 가득 채우고 함성을 질러 진상 조사와 대책 마련을 강제했어도 정부가 이렇게 뻔뻔하게 책임을 면피하고 있을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목소리로 공분을 모았다면 가뜩이나 퇴행성 질병에 시달리는 야당 정치인들이 세월호 문제를 고작 선거 꽃놀이패로 여겼을까? ‘잊지 않겠다’는 말로 세월호 참사를 유가족만의 문제로 떠넘기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직접적인 삶의 비극으로 껴안았더라도 이렇게 차가운 망각과 무관심의 계절이 도래했을까?
슬프게도, ‘배후세력’은 바로 우리다. 세월호 문제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문제, 더 직접적으로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가 당사자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우리, 그래서 너무도 자명하게 이후에 또다시 반복될 재난과 비극을 미련하게 방조하고 있는 우리 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발생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상 규명도 없고, 재발 방지도 없다. 그리고 시민들이 연예인의 욕배틀과 4월16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배우 내한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는 지금 이 순간, 유가족들만 다시 덩그러니 남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부터 유가족들은 4월16일 세월호 1주기까지 416시간 동안의 농성에 들어갔다.
비극에서 배움이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망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말로, 정말로, 늦지 않기만 두손 모아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