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모든 행불행의 원인. 영원한 제도인 가족이 ‘평생 원수’인 경우가 최악일 테고 직장 상사, 동료, 연인, 지나가다 부딪친 사람까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서 너무나 억울할 때 상대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도대체 왜 저럴까? 미친 걸까? 아픈 걸까? 나쁜 걸까?
인간의 본질은 없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얘기.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이 상대의 본질이다. 나열하기 민망한 다양한 저질 행동이 일상인 사람들,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갑질, 일부 ‘진보 인사’의 인간성 바닥에 직면할 때가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마음 편하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면 다시 골치가 아파진다. 정신적 질병(mental disease)은 기분, 감정, 인식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정신 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암이나 당뇨병의 증상이 다 다르듯 정신적 질병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자는 무기력한 이도 있고 행패를 부리는 이도 있다. 주변 사람을 들볶는 타입 중 가시적인 폭력으로 망가지는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리플리 증후군이나 극한의 자기도취와 과대망상으로 자기는 행복한 사람들이 문제다.
증상과 인격은 연속이기도 하고 단절이기도 하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치매다. 온순하고 헌신적이었던 여성이 거짓말과 의심을 일삼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돌변한다. 질병으로 인해 다른 인격,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들뜬 상태와 우울한 상태가 주기적, 변칙적으로 반복되는 조울증은 이 논쟁의 하이라이트다. 환자가 조증(躁症)일 때는 비범한 능력이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매력적으로 보인다. 본인도 주변도 의료진도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재능은 능력이 아니라 병의 증상이다. 리튬(조울증 약)을 복용하고 치료가 시작되면 사라지는 ‘능력’이다.
나쁜 사람은 자기가 너무나 대단한 존재라서 타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도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런 사람이 내 주변을 ‘쓰나미’로 만들었다. 지인들의 논쟁이 한창이다. 아픈 걸까, 나쁜 걸까. 원래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아파서 저렇게 되었나. 내 생각은 간단하다. 나쁜 거다. 약자를 착취하고 패는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그냥 나쁜 사람이다. 아픈(‘미친’) 사람 중에 착한 사람이 훨씬 많다. 집이나 병원에 있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통증이 있는데 품성이 좋아지겠는가. 독감이든 암이든 아프면 누구나 짜증과 불만이 많아지는 법이다. 아픔은 글자 그대로 통증, 증상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아픈 증상이 본인에게 나타나지 않고 타인을 괴롭히는 능력인 경우다. 극심한 주인공병으로 판단력이 마비된 이들은 전문가에 맡기고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다. 이것이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이를 돕는 길이다. 나쁜 사람 때문에 고민하지 말자.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