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수단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부족 대부분이 몰살당하고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그들은 테오, 마메르, 예레미아, 폴, 아비탈 등 대여섯명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반군을 피해 에티오피아로 향한다. 누군가는 탈진으로 목숨을 잃는 험난한 여정이다. 에티오피아도 반군에 점령당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케냐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적군을 만나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족장 노릇을 하던 테오는 기지를 발휘해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적군에 생포된다. 그 후 다른 아이들은 무사히 난민 캠프에 도착한다. 시간이 흘러 미국 캔자스시티 이민권도 부여받는다. 이제는 성인이 된 네 사람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던 중 아비탈의 이주지가 예정과 달리 보스턴으로 배정된 사실을 알게 된다.
<라자르 선생님>의 필리프 팔라도의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만남에 대한 감독의 여전한 관심이 드러난 작품이다. 특유의 관찰자적 핸드헬드 촬영기법도 여전하다. 영화는 수단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독특한 유머로 실화의 무게감을 덜어낸다는 것은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영화가 유발하는 웃음은 대부분 문화적인 차이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이것이 희화화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직업소개사인 캐리(리즈 위더스푼)와 아이들의 관계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캐리는 자신의 직업의식에 의해 아이들을 돕는다. 그러나 이들은 캐리의 도움을 지나치게 고마워한다. 처음 캐리의 행동은 단지 직업의식에서 발현된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아이들이 그녀에게 보여준 마음은 적어도 캐리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
감독은 ‘이동’과 ‘유실’을 중심으로 한 수단인들의 공동체적 생활상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인다. 이들의 ‘이동의 역사’는 늘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을 수반한다.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몰살당한 부족, 여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생사가 불투명한 동료, 이민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한 친구 등이다. 상실감은 그들이 미국에서의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 되어준다. 자신이 안전한 땅 위에 무사히 발 딛고 서기까지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들은 잊지 않으려 한다. 공동체적 삶의 출발점도 여기서부터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