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 밤하늘에 유럽의 ‘첫 번째’ 혜성이 떴다. 기원전부터 혜성을 체계적으로 관측해온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그런 역사가 없었다. 유럽인들은 하늘은 완전하므로 별들이 섭리에 따라 규칙적인 원을 그리며 지구를 돈다고 믿었고, 혜성을 땅 근처의 먼지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관측해온 천문관측가 티코 브라헤의 눈에는 혜성이 대기권의 현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천체가 불완전한 운동을 하는 게 아닐까? 관심을 먼 우주에서 가까운 태양계로 돌린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했다. 행성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완전히 규칙적이지는 않았고 그 궤도는 명백히 원과는 달랐다. 그러나 여전히 천동설에 사로잡혀 있었던 티코 브라헤는 규칙을 찾아내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의 손에 넘어간다.
지동설을 어려서 수용했고 수학적 재능까지 갖췄던 케플러는 관측 자료를 손에 넣은 지 몇년 만에 행성들이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왜 하필 타원인가? 케플러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죽었다. 1682년, 다시 혜성이 지구에 나타날 때까지 그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혜성을 연구하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이 문제를 아이작 뉴턴에게 가져간다. 뉴턴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물체 사이에 질량과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핼리의 권유로 뉴턴은 이 발견을 책으로 펴낸다. 뉴턴은 이 책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후학들은 ‘자연철학’ 대신 ‘과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왜 모든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가? 뉴턴 역시 이를 신의 섭리로 눙쳤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었다. 1910년, 다시 혜성이 지구에 돌아왔고 얼마 뒤 아인슈타인이 답을 찾아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에 의해 공간이 휘어진 효과가 중력이며 이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질량-에너지 변환 공식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폭탄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2차대전 중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할 것을 권고하는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냈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핵분열 원료로는 우라늄이 사용되었다. 지표면에서 채굴되는 우라늄은 대부분 혜성의 부스러기에서 나온 것이다. 폭탄이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피가 붉은 이유는 적혈구에 포함된 철 때문이고, 철 역시 혜성의 부스러기에서 나온 것이다.
종전 이후 원자폭탄은 정치적으로 봉인되었다. 핵분열 기술은 발전소에서 이용되었지만 그 역시 충분히 안전하지 않았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일대가 방사능 폐허가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핼리’라 이름 붙은 혜성이 다시 지구로 돌아온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