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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영상물은 신작 아닌 아카이브와 싸우게 될 것
송경원 2015-03-23

<추억의 마니>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

<추억의 마니>

미야자키 하야오와 호흡을 맞춘 프로듀서가 스즈키 도시오였다면, 차세대 지브리를 이끌어갈 프로듀서는 단연 니시무라 요시아키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로 첫 프로듀싱을 맡은 그는 이미 차세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에 대해 물었고,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의 변화에 대한 사려 깊은 답변이 돌아왔다.

-<추억의 마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인가. 혹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아쉬운 흥행 성적이 스튜디오의 해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그 부분은 내가 지브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 다만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흥행 성적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부문 해산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추억의 마니>는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스탭과 <에반게리온>의 스탭까지, 현재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스탭이 모여 제작됐다.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제작이 끝나고 <에반게리온> 제작이 시작되기 전인 행운의 시기에 제작이 시작되어 일본의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참가하게 됐다. 소녀의 내면적 변화를 다루는 <추억의 마니>는 사적이고 일상적인 연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영화의 성공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일반인은 알기 어렵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과 배경미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우리 주변의 낯익은 ‘흔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마니를 둘러싼 바다 냄새, 바람과 나무의 흔들림 같은. 이번 작품이 이 정도의 퀄리티와 아름다움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스탭들이 집결하여 진행한 덕분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 때까지의 스튜디오 지브리는 사원 고용이 아니라 기획마다 스탭을 소집하는 방식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이후, 예전의 스튜디오 지브리로 돌아가는 거라고 봐도 될까.

=가까운 미래 미국의 픽사,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까지 CG 영상 기술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력과 연출력,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자본력이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때 핵심은 뛰어난 영화를 만들려는 “뜻을 공유하는 집단”을 얼마나 지탱해나가느냐 하는 것 아닐까 한다. 좋은 애니메이션은 결국 그 집단 작업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근간이랄 수 있는 고용제 폐지(혹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변화)가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시장 상황을 결코 낙관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체제는 무척 이상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무릉도원과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건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타격을 주었다. 스스로를 흥분시킬 수 있을 만한,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업계 전체가 심기일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감독인가. 그가 지브리의 차기 선장이 될 수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작품관을 유일하게 계승한 감독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를 위해 활약할 사람이라고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의 뒤를 이를 차세대 감독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유일무이한 재능을 지닌 분들이다. ‘뒤를 잇는다’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굳이 차세대 주자를 꼽자면 안노 히데아키, 호소다 마모루, 가미야마 겐지 등 이미 자리를 잡은 감독뿐만 아니라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미야자키 고로, 모모세 요시유키 등 지브리에서 활약했던 감독과 연출가도 그 리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일본 내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의 가장 큰 변화와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기술의 변화다. 지난 수십년간의 모든 영화, 영상이 아카이브화됐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바뀌었다. 글로벌화, IT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것들이 일반화, 평준화되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그 진행 속도는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다. 앞으로 제작되는 영상물들은 지금 현재의 영상물들이 아닌, 수십년간 축적된 아카이브와 싸우게 될 것이다. 기술을 손에 넣음으로써 우리는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진 모든 작품들, 지금까지 아무도 대적한 적 없는 강력한 라이벌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의 고유한 감성을 작품에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한 인터뷰에서 <추억의 마니>의 흥행 성적이 앞으로의 기획을 결정지을 거라 말한 적 있다. <추억의 마니> 이후 차기작은 어떤 페이스로 만들어나갈 계획인가.

=<추억의 마니>를 완성시킨 다음날부터 요네바야시 감독과는 이미 다음 작품의 구상을 시작하고있다. 요네바야시 감독의 다음 작품은 <추억의 마니>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될 것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이 요네바야시 감독의 전부가 아니다. 그는 미야자키 감독 가장 가까이에서 미야자키 특유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함께 배워왔다. 다음에는 그런 부분을 살릴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대작을 만들자고 이야기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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