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하는 우리 사회 일군의 행태를 보면 강한 상대를 향한 동일시의 ‘욕망’도,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도 아닌,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욕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주한 미 대사 피습 사건 이후 그들이 벌인 행태와 발언을 보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거의 ‘자해’ 수준의 이상행동들이다. 동맹, 혈맹, 우방, 형제… 갖다붙일 미사여구도 동이 난 마당에 새삼 그 이름도 진지하게 등장한 것이 ‘은혜’이다. 흡사 종교적 경지에 이른 숭배랄까. 한국전쟁 끝난 지 60년도 훨씬 넘은 마당에 여전히 정신의 한 부분이 그것에 결박당해 있는 모습에서는 심란함 끝에 연민이 밀려온다. 그 많은 발전과 성장과 부침에도 특정 부류, 특정 집단의 정신적•심리적 허기는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서다. 열망의 정도에 견줘 분출할 길은 막혀 있으니 그것이 이런 괴이한 행태로 나타나는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공감을 얻고 지지를 모을 방법이 그렇게나 없단 말인가.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김기종씨가 사로잡힌 광적인 강박증은 그들의 퍼포먼스에도 빛깔만 다르게 배경처럼 깔려 있다.
사적 이익이나 이념•가치적 지향, 하다못해 ‘일베’ 같은 특정 취향을 동반하는 것들은 맥락이라도 읽힌다지만, 이건 대체 뭐지? 가령 막말 퍼레이드를 벌이는 종편의 시사토크쇼 등은 안 보면 그만이다. 이미 주시청자층도 피로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정치적 변화의 조짐이 조금만 있으면 하루아침에 안면 바꿀 게 뻔하니까. 이른바 ‘주류 코드’가 먹힌다. 문제는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맹목적인, 미국과 북한을 향한 ‘집단적 허기’의 양상이다. 관심병자들의 퍼포먼스로 치부하기에는 사뭇 진지하고 비장하다. 대북 삐라 살포와 미 대사 쾌유 기원 퍼포먼스는 나로서는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한 동시대 두 가지 난제이다. 아무래도 심령학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