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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 나도 저 배우들처럼 빛날 수 있을까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5-03-18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조관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감독 김석윤)에 출연한 가수 조관우를 보고 두번 놀랐다. 잠깐 치고 빠지는 카메오가 아니라 김명민과 오달수 콤비에게 제대로 고춧가루 뿌리는 악역을, 영화 출연이 처음인 그가 맡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맡은 조 악사는 성이 조씨인 데다가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설정인데, 실제 조관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것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알려진 대로 판소리 명창이자 세종전통예술진흥회 이사장인 조통달 선생의 아들인 조관우는 어린 시절 ‘가야금 신동’이라 불렸다). 1994년 가수 데뷔했을 때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대중에게 얼굴을 내보이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던 그가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 출연해 연기에 도전한 사연이 무척 궁금했다. “집이 일산이라 일산을 거의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조관우가 오랜만에 <씨네21>이 있는 홍대 근처로 봄 나들이를 나왔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가족들은 안 놀랐을 거다. 아내와 아이들은 맨날 집에서 연기 연습하는 걸 봤으니까. (웃음)

-김석윤 감독의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2011)를 함께한 인연으로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첫 영화 출연인데 부담스럽진 않았나.

=<청담동 살아요> 할 때도 두려웠다. 막상 연기를 시작해보니 내 모습이 어색해 모니터링을 못하겠더라. 감독님이 해준 얘기인데 이번 영화의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나를 캐스팅하는 걸 반대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밀어붙였다고 하더라.

-촬영 전, 김석윤 감독이 “김명민, 오달수와 하는데 네가 연기를 못하면 다 망치는 것”이라고 말했다던데.

=김명민, 오달수 두 사람한테 묻힐 거다. 그런데 조 악사는 그들을 가지고 놀아야 하는 캐릭터라고 말씀하셨다. 몰입해서 할 것인가, 못한다고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아내한테 ‘못하겠다고 말하고 올게’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이런 천운을 주신 것에 대해 감독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출연하기로 했다.

-김석윤 감독은 연습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캐스팅을 바꿀 생각도 남몰래 했다더라.

=알고 있었다. 부담감 팍팍 주고 놓을 수 없게 하려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조 악사는 어떤 캐릭터였나.

=어려웠다. 조선시대 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중인 계급이자 김명민과 오달수를 위협하는 암살자. 시대극에 맞춰 연기를 해야 했던 까닭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야금 연주자라는 설정은 ‘가야금 신동’이라 불렸던 어린 시절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 같아 재미있더라.

=고마웠다. 리얼이잖나. 흉내내는 게 아니라. 가야금 연주로 한번 먹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는 자신 있으니까.

-참고했던 모델은 없나.

=아버지, 아들, 여러 배우들한테 다 조언을 구했다. 이경영씨 반응은 이랬다. ‘노래나 해, 네가 이런 거 왜 하냐.’ (웃음) 아버지한테 장님은 어떻게 걷는지 여쭤봤다. 걸음걸이를 다양하게 연습해봤는데 누군가가 가르쳐준 대로 하면 영 어색하더라. 영화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장님이 그렇게 빨리 걷는 사람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걸은 거다.

-대사 연습할 땐 어색하진 않았나.

=시나리오를 읽으면 ‘연기’가 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고 말이다. 대본을 보면서 연기를 해보라고 하면 나만큼 국어책 읽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김석윤 감독과 <청담동 살아요> 하면서 약속했던 게 있다. 오전 8, 9시에 하는 대본 리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촬영 전, 이보희 선배님과 대사를 맞춰보면서 이 선배님이 ‘연기가 왜 그래’라고 하시면 김석윤 감독이 ‘슛 들어가면 괜찮아져’라고 얘기해주고. (웃음)

-실전에 강한 스타일인가보다.

=그냥 시나리오를 읽으면 그렇게 된다.

-노래할 때도 리허설과 무대 위의 실력이 다른가.

=정반대다. 리허설 때는 잘하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긴장된다. 반대로 연기의 경우, 리허설 때는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는데 슛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액션 연기도 해야 했던 까닭에 살도 많이 뺐을 것 같다.

=62kg에서 53kg까지 뺐다. 감독님이 살부터 빼라고 했다. 아주 독하게 식단을 조절하며 운동했다.

-조 악사는 김석윤 감독이 몇년 동안 지켜본 조관우의 다양한 모습이 반영됐다던데.

=촬영할 때 감독님께 살짝 화가 난 적이 있다. 가야금을 연주하다가 거칠게 내려놓는 신이 있었는데, 가야금을 조심히 내려놓으니까 감독님이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고 화를 내더라. 잠 한숨 제대로 못 잔 데다가 가야금을 두고 계속 시비를 거니 독은 독대로 오르고. 너무 화가 나서 가야금 갖고 와봐, 그랬더니 슛 들어가더라. 그게 그대로 영화에 나오더라. 감독님이 내 실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걸 잘 이용하셨다.

-한 인터뷰에서 김명민씨가 ‘조관우가 얼마나 몰입했으면 컷 사인이 났는데도 목을 계속 조르더라’라고 말했더라.

=컷이 뭔지 해봤어야 알지. 계속 졸라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웃음)

-이 어려운 걸 왜 한다고 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있는지 후회한 적은 없었나.

=연기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안 맞는 건지 진짜 모르겠더라. 감독님이 몇번 불러서 1 더하기 1은 2라고 알려줬는데,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 몰랐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왜 2가 됐는지 알게 됐다. 천운이 두개 있다면 한번은 가수가 됐을 때고, 또 한번은 연기를 하게 된 지금인 것 같다. 감독님이 제2의 인생을 만들어준 덕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작품이 <청담동 살아요>였다. 당시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병헌씨 결혼식장에 초대를 받아 갔다. 그곳에서 여러 배우들을 봤는데 빛이 났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그게 되게 부러웠다. 나도 연기를 하면 저렇게 빛이 날 수 있을까. 그런 감정이 막 생겨났다.

-젊었을 때 영화 출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나.

=딱 한번 있었다. 여균동 감독의 <1724 기방난동사건>(2008)에서 조 악사와 똑같은 악사 캐릭터였다.

-왜 출연하지 않았나.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병헌이 결혼식에 갔을 때 영화배우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만 하다가 영화 제의가 들어오니… 나중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오더라. 돈을 그렇게 들여서 찍는 영화인데 망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영화 끝난 뒤 배우들이 한달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 캐릭터로부터 나와야 한다면서 말이다. 옛날에는 그런 얘길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영화를 한편 찍어 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몰입했으니까.

-가수 활동할 때는 그런 적이 없었나.

=1집 앨범 ≪My First Story’≫(1994)를 낸 뒤 첫 콘서트를 하고 집에 갈 때 그렇게 허전하고 외로울 수가 없었다. 5천여 관객 앞에서 노래하다가 집에 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영화가 끝나자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더라. 개봉하니까 그런 마음이 또 생기고.

-지난해 가수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앨범 ≪Friday Night≫를 내고 컴백했다. 알리가 피처링에 참여하고(<한걸음>), 두 아들 조휘, 조현도 곡 작업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데.

=기존 곡을 다시 부르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관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음반을 낼 생각도 하고 있다. 지금껏 해왔던 작업 스타일, 곡 장르를 완전히 바꿔서 말이다.

-두 아들이 앨범에 참여했는데, 음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음악하겠다는 아들을 말리진 않았나.

=전혀. 나는 아버지가 말려서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루는 게 없다.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특히, 둘째가 못 다루는 악기가 없고 절대음감일 정도로 재능이 많다.

-든든한 동료가 생긴 셈이다.

=둘째가 잘난 척을 많이 한다. (웃음) 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부를 곡을 편곡하고 있는데, 둘째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준비하고 있다. 댄스곡을 한번도 부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시도해보려고.

-어린 시절은 어땠나. 국악인 가정에서 태어난 까닭에 음악은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가수가 됐나.

=중학생 때 공부를 못했다. 고등학교 갈 실력이 안 될 정도로. 아버지도 음악하지 말라고 했는데 공부를 못하니 특기생으로라도 고등학교에 보내야 되잖나.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가야금을 가르쳐주셨다. 대학교 입학할 때 처음 배우는 짧은 산조를 중학생 때 배웠다. (웃음)

-평소에 노래방에 자주 가는지 궁금하다.

=시끄러워서 노래방을 안 좋아한다. 기분이 나면 가끔 간다. 주로 내 노래를 부르냐고? 다른 가수 노래도 부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국 내 노래를 듣길 원하더라.

-노래방 애창곡은 뭔가.

=<사랑해 당신을>(원제는 <I Still Loving You>). 영화 <첨밀밀> 주제곡.

-평소에 영화는 많이 보나.

=아이들과 함께 자주 극장을 찾는다. IPTV로도 많이 보고. 최근에는 많이 못 봤다. 제일 기억에 남는 영화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감독 마이크 피기스, 1995)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감독 멜 깁슨, 2004). 특히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콘서트가 끝난 뒤 드는 허무함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데뷔 초, 녹음된 반주로 노래하지 않는다, 유흥업소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방송 출연을 하지 않는다 같은 원칙을 고집한 것으로 꽤 유명하다. 그같은 원칙을 세운 이유가 뭔가.

=당시엔 방송 나가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명성에 누가 될까봐, 얼굴만 알려지고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방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가지 원칙을 깬 계기가 뭔가.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에 유흥업소 무대에 안 설 수 없게 됐다. 방송에 출연하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빠가 가수인 줄 모른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기 전까지 지난 20여년 동안 방송에 출연한 게 20번도 채 안 됐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6개월 동안 매주 방송에 나왔다. 녹화 공연이 끝나면 방청객들이 ‘잘생겼어요’ 그런다. 유독 나와 김범수한테만. (웃음)

-지금까지 부른 노래로 베스트 앨범을 제작한다면 어떤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하고 싶나.

=<>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곡이고. 행사 가면 <>을 불러달라는 요구가 굉장히 많다. 베스트 앨범에는 진성과 가성의 대비가 큰 <꽃밭에서>를 타이틀곡으로 부르고 싶다.

-이번 영화로 큰 산을 하나 넘었는데 계속 연기할 생각은 없나.

=이 영화는 김석윤 감독과 스탭들이 만들어준 거다. 앞으로 연기를 한다, 안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실력은 아직 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김석윤 감독님처럼 나의 능력을 잘 끌어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싶나.

=하고 싶다. 어떤 역할이든지 다 해보고 싶다. 양아치 역할도 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지가 문제지. 마음이야 뭐. 당장은 콘서트에 집중할 계획이다. 4월11일 오후 3시와 7시 백암아트홀에서 콘서트 <물들이다>가 열린다. 꼭 소개해달라. (웃음)

인터뷰가 끝난 뒤 예정에도 없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연기 초짜인 그가 김명민, 오달수 같은 연기 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으며,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런 중압감 속에서 적어도 폐는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술자리에서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평소에는 어눌하다가도 음악 작업을 할 땐 굉장히 예민해지는 그의 얼굴에는 다양한 면모가 있어 영화에서 커다란 반전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는 김석윤 감독의 말처럼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충무로에 ‘배우’ 조관우는 앞으로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한 원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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