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9> <엘리시움>의 닐 블롬캠프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블롬캠프는 늘 배제된 자들의 상황을 공간적으로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채피>에서는 갱들의 공간에 특수한 인물로서 로봇 캐릭터가 중심에 놓인다. 로봇 개발자 디온(데브 파텔)은 폐기 처분될 위기에 처한 경찰 로봇 스카우트 22호를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 채피(샬토 코플리)로 재탄생시킨다. 그와 경쟁관계인 빈센트(휴 잭맨)는 파괴를 본령으로 한 로봇 개발에 힘쓰면서 디온을 경계한다. 채피는 예상되는 위험을 피해 뒷골목의 갱스터 무리의 손에 넘겨진다.
도입부는 <로보캅>(1987)을 연상시킨다. 다만 <로보캅>에서 주체는 인간이었지만, <채피>에서 주체는 기계(로봇)다. 로봇은 인간을 이용해 내면을 가진 온전한 주체로 탈바꿈한다. 인간이 숙주가 된 세상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그것은 <매트릭스>(1999)에서 이미 예견한 세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이 무게감을 덜어낸 가벼운 터치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갱스터의 손에 자란 로봇은 금목걸이를 치렁치렁 감은 채 껄렁한 말투와 행동을 구사한다. 예외적인 로봇의 이미지는 로봇에 대한 고정화된 이미지를 해체하고 변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려는 하나의 시도다. 경찰력의 보충이라는 존재 이유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성장해, 창의적 활동이 가능한 로봇을 예견한다. 한계를 뛰어넘은 로봇의 성장기를 통해 운명과 개척 사이,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찰 가능성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