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앤더슨은 현재 스웨덴 영화계에서 ‘마스터’로 불리는 노장감독이다. 그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2014, 이하 <비둘기>)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비둘기>는 외판원인 샘과 조나단 콤비가 뱀파이어 이빨과 라텍스 가면 등을 팔기 위해 예테보리(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창백하고 무뚝뚝한 표정이며 비슷한 대사를 반복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웃기면서도 슬픈 정서를 만든다. 로이 앤더슨을 만나기 위해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24’를 찾아갔다. 1층 한편에는 <비둘기>를 포함한 그의 영화의 많은 부분이 촬영된 스튜디오가 자리했다. 2층 작업실에는 그가 직접 그렸다는 컨셉 아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로이 앤더슨이 디자인한 조각상이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남녀다.
-책상 위가 상당히 복잡하다. (웃음)
=청소할 시간이 없다. (하하) 작업이 하나 끝날 때마다 싹 치우고 새로 시작하는 게 습관이기도 하다. 보기에는 엉망이라도 내 머릿속에는 나름 질서가 있다. 그래서 누가 와서 뭔가를 찾겠다며 책상을 건드리면 그게 더 큰일이다.
-<비둘기> 얘기를 해보자. 외판원인 주인공들의 모습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운데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더 기막히다. 이를테면 아픈 엄마의 병문안을 간 딸이 엄마의 보석을 탐낸다거나, 페리 식당칸에서 죽은 남자를 둘러싸고 그가 시킨 음식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이야기하는 승객과 점원이 등장한다.
=내가 ‘이 영화에는 모든 게 다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의 인간사를 코믹하면서도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의 연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런 세계에 대해서 좀 독특하게 풀어본 거다. 그리고 (스캔들을 일으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스웨덴의 왕 찰스 12세를 현대의 카페 신에 등장시킨 것도 워낙에 내가 왕실 체제를 경멸해서다. 상류계급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늘 굴욕감을 주는 쪽 아닌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멸시하고 모멸감을 안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로이 앤더슨이 직접 그린 <비둘기>의 컨셉 아트. 청소년기 그의 꿈 목록에는 화가나 조각가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비둘기>는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 제53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유, 더 리빙>(2007)에 이은 ‘인간 3부작’의 완결판이라고 말했다.
=나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어준 영화가 있다. 12살 때 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이다. 어찌나 강렬했던지 지금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복도 한쪽 벽면에는 <자전거 도둑>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정도다.) <자전거 도둑>은 지극히 평범해서 때론 하찮게 취급받는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휴머니즘,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인간적인 삶의 조건에 대해 말한다. 나 역시 가난한 노동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화를 보는데 나와 우리 가족 얘기 같더라. 이 영화의 시선이 내 영화의 주요한 정서이자 테마다. 그런 면에서 <비둘기>는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들이 집약돼 있는 영화다.
로이 앤더슨이 직접 그린 <비둘기>의 컨셉 아트. 청소년기 그의 꿈 목록에는 화가나 조각가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말해왔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가라면 당연히 휴머니즘에 대해 말해야 한다. 동시에 예술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사로잡는 얄팍한 눈속임들,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표상에는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 그런 걸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그대로 수용해버리면 장기적으로 굉장히 위험해진다. 물론 그런 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늘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나는 언제나 내 작업이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하길 소망한다.
-당신의 영화는 현실감 짙은 장면 연출보다는 지극히 통제되고 가공된 상황 안에 인물들을 세우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내러티브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서사를 고민하는 건 오히려 나를 지루하게 할 뿐이다. 그보다는 비주얼적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지향한다. 이미지를 재배치해보거나 사운드 효과를 이용해서 신들을 연결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관객이 그걸 보고 깜짝 놀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웃음)
-<비둘기>에서도 그랬듯 전문배우가 아닌 비전문배우나 지인들을 출연시키는 걸로 안다.
=비전문배우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물론 전문배우도 쓰지만 전문배우가 비전문배우처럼 연기해주길 바란다. (웃음) 사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상관없다. 나는 촬영 전에 엄청나게 많은 리허설을 하니까.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페이소스라는 건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니까.
-1980년에 제작사 ‘스튜디오24’를 직접 차렸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장편 데뷔작 <스웨덴 러브 스토리>(1970)가 상당히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에 두 번째 작품 <길리압>(1975)은 대참패였다. 상황이 그렇게 급변하자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더라. 그 무렵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가 자기 욕심 차리기 바쁜 양반이라 자금 운용에 어려움도 컸다. 무엇보다 영화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빌리는 데 그 비용이 엄청났다. 뭔가 작은 규모의 영화라도 모든 게 잘 갖춰진 상태에서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카메라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카메라부터 구입했다. 그러고 나니 스튜디오도 있어야겠더라. 하하.
-‘스튜디오24’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
=전혀 없다. 단지 이 건물이 위치한 거리 주소다. (웃음)
-당신은 예술성이 강한 영화제작만을 고집하지 않고 400여편의 상업광고도 만들어왔다.
=나의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다. 나는 사회주의자다. 하지만 ‘위험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웃음) 휴머니즘이 강한, 시장을 수용할 줄 아는 사회주의자다. 들어오는 상업광고를 모두 다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택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용 영상물을 제작해서 거둔 성공 덕에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이 행복하다.
-풍문에는 당신이 더이상 영화제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새로운 영화를 빨리 만들고 싶다. 분명한 건 시각적으로 강렬한 작품이 될 거라는 점이다. <자전거 도둑>만큼이나 좋아하는 영화가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다. 남녀주인공이 밤거리를 거닐며 대화하는 장면 같은 강렬한 이미지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