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성기모형을 극장 앞에다 걸어야 되지 않을까요?” <나쁜 남자>의 제작사인 LJ필름 기획실 한성호씨는 짐짓 당황했다. 배급과 홍보를 맡을 회사에서 조차 <나쁜 남자>는 ‘노골적으로 야한 영화’라는 방식이 아니면 안 풀릴 영화처럼 보였단 말인가. 그러나 기획실쪽 생각은 달랐다. 이들이 처음부터 잡은 <나쁜영화>의 마케팅 컨셉은 고급스러운 느낌의 에로티시즘. 개봉을 앞둔 시점의 급한 결정도, 단순히 반짝하는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흥행에 참패한 <수취인 불명>을 들고 해외영화제를 나갈 때부터 <나쁜 남자>의 컨셉 마케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나쁜 남자> 마케팅의 출발점은 김기덕이란 감독의 ‘브랜드화’였다. 분리된 프로젝트별 홍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국내, 해외시장에서 김기덕이란 감독에 대한 이해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김기덕 영화 특유의 매혹적인 이미지들과 작품설명, 인터뷰 등이 수록된 자료집 2천권은 그렇게 제작되어 국내와 해외에 반반씩 뿌려졌고, 이 자료집은 여전히 UFO 같은 존재로 인식되던 김기덕이란 감독을 새로운 포지셔닝을 기다리는 존재로서 이해시키는 “휼륭한 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온라인 영화마케팅 전문업체와 벌인 설문조사를 통해 김기덕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통계화시키면서 자체적으로 이 감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장점과 단점들을 파악했을 뿐 아니라 막연히 이럴 것이다라는 감독에 대한 평가를 가시화 시켰다.
논쟁을 이용하라
이런 기본 위에 들어간 다음 작업은 바로 컨셉잡기였다. 물론 <수취인 불명>과 달리 성적인 코드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긴 했지만 기존의 안일한 방식으로는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김기덕 감독 + 에로영화= 날것의 노골적인 영화라는 등식이 성립되지만 그것을 한차례 고급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즉 남녀가 함께 보러간다고 해도 창피하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울 것, 그러나 구미를 땡길 만큼 자극적일 것. 결국 ‘고급 에로티시즘’으로 결론지어진 <나쁜 남자>의 컨셉은 명화의 느낌을 살린 포스터 비주얼이나, 언론홍보용 이미지들에도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또한 지적 허영의 거품이 빠진 영화관람 행태에 비추어 영화제 타이틀은 ‘예술영화, 따분한 영화’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 ‘베를린 영화제 진출’ 같은 카피를 되도록 자제했다.
또한 좋아하는 여자를 창녀로 만든다는 반감을 살 수 있는 영화의 시놉시스는 뒤로 감추고 영화가 주는 모호하고 매혹적인 이미지의 강렬함을 살려 대사 없는 예고편이나 이미지에 치중한 홍보를 이어나갔다. 개봉 이후 치중했던 것은 ‘작전명, 키노 디베이트(Kino debate)’.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예상대로 여성평론가와 남성평론가 사이 격렬한 논쟁이 오갔고, 이런 논쟁은 어떤 영화길래 하는 호기심 유발과 함께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면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쁜 남자>는 이런 일련의 논쟁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유연하게 이용했다.
물론 70만이라는 예상치 못한 흥행결과는 분명 조재현의 한억관, 드라마 <피아노>의 힘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조재현의 대중적 인기가 오르자 홍보는 감독을 숨기고 배우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비천하지만 착한’ 한억관의 이미지는 ‘잔혹하지만 연약한’ 한기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기존의 스타 시스템을 이용한 홍보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갑자기 한억관이 튀어나와 “오이소, 보이소, <나쁜 남자> 죽입니더” 하지 않고, 애초의 상위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GREAT ACTOR” 같은 배우의 위상을 높이는 식의 카피를 조재현의 얼굴 위로 내세웠을 뿐이다.
“<나쁜 남자>의 흥행을 두고 조재현의 힘이 90%였다는 말도, 마케팅 70%, 조재현 30%라는 말도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TV 시청자가 영화관객으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것은 순진한 믿음이다. 만약 <나쁜 남자>의 성공을 피상적인 ‘조재현 효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도 남도 하나도 배울 게 없다. 어떻게 ‘조재현 효과’가 유도되었는지, 어떻게 ‘조재현 효과라고 믿도록’ 유도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답이 바로 <나쁜 남자>가 자랑하는 보이는 듯 안 보이고, 러프한 듯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다. <나쁜 남자>의 포스터와 카피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못 먹는 감 터뜨려버린다’, 어때?
지난해 부산영화제가 열리던 남포동 일대는 한 영화사가 도배하듯 붙여놓은 포스터 때문에 술렁거렸다. “아이고, 이게 뭐꼬…” 하며 시선을 돌리는 내숭형 아가씨들을 비롯해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는 아저씨들, “가슴은 그려넣은 것 같은데…” 하며 분석에 들어간 무리들도 보였다. 알몸으로 다리를 벌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의 뒷모습, 그리고 여자의 거울에 반사된 한 남자의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카피는 한술 더 뜬다. ‘나의 애인 창녀만들기’라. <나쁜 남자>는 그렇게 파격적인 포스터와 ‘센’ 카피 하나로 남포동 바닥을 금세 접수해버렸다. “심의에 걸린 포스터를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역이용해보자고 생각했죠.” 그 포스터에 대한 개인의 선호가 어떻든, 영화제 기간을 이용한 포스터 홍보는 <나쁜 남자>라는 영화를 쉽게 잊기 힘든 ‘어떤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선이 집중될 만큼 파격적이지만 결코 ‘쪽팔리지’ 않는 수준의 포스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주로 고야의 작품집 등 여러 명화집을 참고하면서 이미지 세팅에 들어갔다. 당시 조재현이란 배우의 대중적 호소력이 불분명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만으로 작게 가면서도 거울 속에서조차 여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모습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나쁜 남자의 기운”을 살렸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누워 있는 모습과 앉아 있는 모습, 두 가지 시안이 올라왔다. 그러나 누워 있는 포즈는 포스터 규격에 맞추기 위해 엉덩이를 자르게 되면 애초에 의도했던 매력이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림이나 거울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판타지영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결국 ‘앉아 있는 여자’로 낙찰이 나고 포스터가 만들어졌지만 “놀고 있냐. 예술하냐”는 비아냥 섞인 반응부터 “너무 어렵다. 포스터의 느낌이 없다. 그리고 배우 얼굴을 안 보여주면 되겠냐”는 우려어린 충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보여지는 느낌 외에도 숨겨진 코드들이 많은 포스터였고, 야하지만 싸구려 같지 않은, 고급 에로티시즘이라는 상위의 전략을 적절히 따르는 이미지라고 판단” 소신껏 밀고 나가게 되었다.
이런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는 시점부터 요구되는 것은 카피였다. 포스터보다 더 심각하게 이루어지던 이 카피고민은 기획실 직원들을 한두달 동안 잠 못 들게 했다. “고급스러운 비주얼에 반대로 카피는 솔직하면서 직접적인 걸로, 언밸런스하게 가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했죠.” 이어지는 회의 끝에 ‘못 먹는 감 터뜨려버린다’, ‘널 망가뜨릴수록 난 사랑을 느껴’ 등 별의별 카피들이 다 쏟아져나왔지만 어느 하나 썩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때 기획실의 윤동희씨가 “그러니까 가령 내 애인 창녀만들기 식의 느낌을…”이란 말을 흘리는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그래! 그걸로 하면 어떨까?” 결국 초반 <나쁜 남자>의 보도자료와 포스터에는 카피만들기의 아포리즘적 강박을 완전히 깨버린 ‘나의 애인 창녀만들기’라는 문구가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심의에서는 포스터의 원색적인 카피와 누드를 문제삼았고 결국엔 여자의 엉덩이 일부분을 천으로 가리면서, 카피 또한 비교적 얌전한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를 만났다”로 조정하면서 간신히 통과되었다. 그러나 초반의 카피와 비주얼은 부산영화제 포스터 도배나 “‘나의 애인 창녀만들기’ 카피 돌리도…” 식의 네티즌 의견 문구를 광고 속에 교묘히 그리고 끊임없이 흘리는 방식으로 긴 생명력을 부여받게 되었다.▶ <나쁜 남자> <버스, 정류장> <질투는 나의 힘> 마케팅 사례 연구
▶ 전략1 <나쁜 남자> 감독을 브랜드화하라
▶ 전락2 <버스, 정류장> 관객의 감성에 다가가라
▶ 전략3 <질투는 나의 힘> 관객의 힘을 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