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수감된 이정순 할머니(김수미)는 감옥의 너그러운 큰어른으로 군림한다. 몇년 후 출소한 정순은 큰아들(정만식) 집에 정체를 숨기고 가정부로 취직한다. 아들 장모(박준금)의 냉대에도 정순은 귀여운 손자(이아인)의 재롱을 낙으로 삼아 아들네 살림을 도맡는다. 간간이 쌓인 스트레스는 공원에 나가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으로 푼다. 한편 대국민 욕배틀 오디션 프로그램 <욕의 맛> 담당인 양PD(이영은)는 강력한 후보를 찾아 헤매던 중 정순의 욕을 듣게 된다. 양 PD의 설득 끝에 정순은 <욕의 맛>에 출연하게 되고 ‘지옥에서 온 헬머니’ 캐릭터로 인기를 끈다. 하지만 과거사가 왜곡돼 알려지며 정순은 무시무시한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다.
<가루지기> 이후 신한솔 감독의 7년 만의 신작이다. 데뷔작 <싸움의 기술>에서처럼 감독은 이번에도 짜증 권하는 사회에 짓눌린 소시민들의 답답함을 코믹하고 시원하게 풀어내려 한다. 먼저 욕배틀 오디션을 벌여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도가 참신하다. 과연 연륜과 경험에 바탕한 푸근한 욕을 들려주는 캐릭터로 김수미는 다른 누구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적역이다. 웃기는 캐릭터가 아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라는 점이 예상을 뒤엎는데 오히려 그 점이 드라마틱하다. 사회적으로 부쩍 이슈가 되고 있는 요소들, 가령 ‘지하철 개저씨’의 시비나 언론과 여론의 마녀사냥, ‘갑질’에 치이는 승무원 등을 끌어들여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도 나쁘지 않다(영화에선 ‘라면상무’를 모티브로 삼았지만 때마침 ‘땅콩리턴’ 사태가 발생해 절묘한 타이밍으로 시의성까지 얻었다). 전작들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귀여운 소시민 캐릭터와 인간에 대한 신뢰도 훈훈한 기운을 전한다.
반면, 장점만큼 단점도 두드러진다. 컨셉이 너무 강렬해서였는지 이를 뒷받침하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약하다. 영화의 주요 뼈대가 되는 할머니의 곡절 많은 과거지사와 욕배틀 오디션이 조화롭게 섞이지 못했다. 별다른 고민이 보이지 않는 착하기만 한 혹은 나쁘기만 한 보조 캐릭터는 서사를 더욱 헐겁게 만들 뿐이다. 가장 큰 단점은 토너먼트 구성에 대한 집착과 대사를 들려줘야 한다는 강박에 눌려 편집이 지루해졌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부분을 예능식으로 리드미컬하게 편집했더라면 더 신선하고 유쾌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을’들의 통쾌한 역습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