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여행은 사람을 얼마나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남도 풍광을 벗삼은 네 남자와 한 여자의 로드무비인 <기화>는 형체는 사라졌어도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다. 막역한 친구인 희용(홍희용)과 승철(백승철)은 4년 만에 출소하는 기화(김현준)를 데리러 간다. 기화는 아버지인 희용에게 불만이 많고, 승철은 어색한 희용과 기화의 사이를 중재하느라 바쁘다. 세 남자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시끌벅적한 동행을 시작한다. 점심도 먹고, 축구도 보고, 얼떨결에 지인의 장례식장도 방문하고, 옛 친구의 집도 들른다. 부탄가스 중독인 희용은 일행 몰래 가스를 흡입하는 와중에 곤경에 처한 어린 다방 종업원 연소(손민지)를 구해주게 되고, 연소는 늙은 노숙자(정재진)와 가까워진다.
“담배를 끊었어? 술도 끊었어? 얼마 안 있음 목숨도 끊겄어~.” 충청도 사투리의 묘미를 걸쭉하게 살린 희용과 승철의 툭탁거림에 시작부터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꼬마들이 운동회를 벌이고 있는 운동장을 배경으로 세 남자가 낑낑대며 가스가 떨어진 차를 끌고 가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폭소를 터뜨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실제로 조그만 분교의 교장과 선생님들, 학생들과 학부모, 마을 주민들까지 자발적으로 총출동해줘서 연출할 수 있었던 귀여운 신이다.
반면 희용이 아들 앞에 전라로 우뚝 서 있거나 가스를 부는 장면, 연소의 오럴섹스 장면 등 일순 관객을 당황케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불편한 기분을 유발하는 그 낯선 장면들 또한 어느새 삶의 일부분이 되어 스쳐가고 관객은 곧 모든 상황을 일상으로 여기게 된다. 그렇게 이들의 여행이 삶의 여정으로, 인생의 일부로 치환될 즈음 초반부 등장했던 승철의 구박 섞인 농담이 슬픈 복선으로 슬그머니 탈바꿈했음을 관객은 깨닫는다. 코믹한 버디무비로 열린 영화는 은근슬쩍 신파와 드라마를 뒤섞다 성장영화로 끝을 맺는다.
“배창호 키드”를 자처, “오마주”라는 문정윤 감독의 표현이 이해될 만큼 <기화>의 몇몇 장면은 <고래사냥>(1984)의 일부를 빼닮아 있다. 물론 배창호 감독의 ‘길’에 비하면 페이소스는 훨씬 약하다. 하지만 남도의 들판, 논밭, 강변을 카메라 안에 꼭꼭 눌러담아낸 풍광은 충분히 멋스럽고 운치 있다. 한여름밤의 꿈같은 이들의 여행을 지켜보고 나면 절로 가방 꾸릴 생각이 드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