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식 감독의 전작 <러시안소설>에는 소설가 신효가 쓴 소설 <조류인간>이 등장한다. 그리고 <러시안소설> 촬영을 끝낸 신연식 감독은 곧이어 <조류인간>이라는 영화를 만든다. 일종의 예고 촬영이었달까. <조류인간>은 새가 되고 싶어 집을 떠난 아내(정한비)를 찾아 헤매는 남편의 여정을 따라간다.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다. 유명 소설가인 정석(김정석)은 15년째 작품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아내를 찾는 일에 몰두한다. 그런 정석 앞에 소연(소이)이 나타난다. 소연은 정석에게 아내를 찾기 위한 여정의 안내자를 자처한다. 소연과의 동행길에서 정석은 비슷한 이유로 소중한 이들을 잃은 한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고, 아내의 흔적을 되짚는 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신연식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조류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자와,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다. 아내의 이야기와 정석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로 나뉘어 교차 진행된다. 더 몰입도가 높은 쪽은 과거의 이야기, 즉 아내의 이야기다. 새가 되기에 적합한 체질은 무엇인지, 새가 되려면 어떤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새가 되기 위한 과정을 모두 거치면 정말 새가 되는 것인지, 영화는 마치 ‘조류인간’이 되는 법이 실재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과거와 현재가 멋지게 조우한다.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절묘하게 뒤섞은 이 클라이맥스 장면은 꽤 깊은 잔상을 남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중 한편으로 소개된 <조류인간>은 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제작비 1억원으로 완성됐다. 부족한 예산은 곧잘 미장센의 포기로 이어지곤 하는데, 겨울산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한 <조류인간>은 종종 시적인 풍경을 화면에 담아내며 관객의 눈길을 붙든다. 물론 신연식 감독만의 무기는 따로 있다.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페어러브> <러시안소설> <조류인간>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신연식 감독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감독이다. 잠재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는 데도 재주가 좋다. <조류인간>에선 무수한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한 김정석, 가수 출신 배우 소이, 신인배우 정한비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