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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블랙박스] ‘갑질’의 연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재개봉과 영화산업에서의 갑을병정 사회학

글 :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제작자인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는 지난 2월9일 <스타뉴스>에 “오늘부터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트영화관을 중심으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재개봉을 요청했다”라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재개봉을 추진함을 공식 선언”했다. 실제로 2월12일부터는 CGV아트하우스를 중심으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상영 스크린이 추가됐다.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스크린을 확대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만큼 대단히 명료하게 영화산업 내의 갑을병정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갑 중 갑이라 할 메이저 극장체인들이 사실상 종영처리한 특정 영화에 대해 스크린을 늘려주는 일은 없었다. CGV 관계자를 출처로 하는 기사(<오마이스타>)에 따르면 프로그램팀의 의견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쪽이 예술영화 인정 신청을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말만 그렇지 솔직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쪽의 CJ CGV에 대한 집요한 ‘수직계열화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주요한 요인일 것이다. 거기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쪽에서 일반관이 아닌 아트하우스에서의 상영을 요청했으므로, 겨우 20여개 아트하우스 스크린의 일부를 배정하는 것은 오히려 아트하우스 좌석점유율을 높여주는 조치이니 더더욱 환영할 만하다. 행복한 문제 해결! 당연하게도 아트하우스의 갑작스런 프로그램 변경에 대해 감히 어떤 배급사가 문제제기를 하리오. 갑 중 갑이신데. 일방적으로 을을 자처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쪽은 재기를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신규 스크린에서의 좌석점유율과 ‘상영관 밀어주기 타파’라는 양손의 무기를 근거로 한번 ‘꿇은’ 극장들과 3차전을 시작할 수 있다. 자, 상영관 밀어주기 타파 또는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문제라는 명분도 얻고, 매출 확대의 기회라는 실리도 얻었다. 단, 신규 스크린에서 좌석점유율이 어느 수준 이상 나와야 한다는 리스크는 있지만.

그럼 병은 누구일까? 아트하우스를 제외한 예술영화전용관들이다. 처음 개봉할 때는 전용관을 처다보지도 않던 영화가 주류 극장과의 다툼에서 밀려났을 때, 작품성 또는 사회성 등을 기준으로 손을 마주잡는 전용관들이다. 통상 예술영화전용관의 연간 평균 좌석점유율이 10% 미만인데, 이럴 때 사회적인 관심과 상영의 명분을 동시에 지닌 영화를 틀면 평균 좌석점유율 이상의 매출이 확보된다. 더군다나 그 영화가 예술영화로 인정받으면 더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상영 쿼터를 지킬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참을 만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영화판의 정은 누구일까? 아트하우스나 예술영화전용관에 스크린 하나, 상영회차 하나를 받아야 하는 독립영화와 수입예술영화 또는 그 배급사들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미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부은 데다가 셀러브리티를 앞세운 논란의 중심에 있으니, 이들 입장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블록버스터인 것이다. 몇몇 영화들은 아트하우스의 프로그래밍 변경에 따라 개봉일자를 옮기거나, 혹은 개봉조차 못하고 IPTV로 직행해야 할 것이다. 주류 상업영화가 이렇게 잔인하게 갑질을 해도 되나 하는 심정들일 것이다.

도식화하자면 메이저 극장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예술영화전용관들의 동상이몽식의 합작이라 할 만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쪽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을이 정에게 또 다른 갑질을 한 셈이다. 피해가 너무 크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이 전용관에서 상영을 하다 일반관으로까지 확장되는 사례를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영화 생태계의 최하위층을 밀어젖히며 상위 포식자들이 타협하는 관행을 만든 것이다. 과연 이런 방식의 합작과 봉합이 영화산업의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며, 상영관 밀어주기 관행의 타파이며, 상영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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