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줄에 들어섰다고 선물 한 상자를 받았다. 시집이 있었고 말린 목화가 있었고 향초가 있었다. 내 시는 한편도 못 외우면서 수피 시인 루미의 시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내 스타일을 감지한 이의 예민한 센스였을까.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촛불과 술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한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연애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절망과 희망이 한 박자에 실린 삶이라는 인생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싶으니까 순간 망망대해 바다를 본 듯했다. 그러니까 우린 무슨 ‘소용’을 위해 이다지도 힘들게 눈앞에 있는 ‘당신’을 두고 평생토록 멀리 있는 ‘당신들’을 찾아 헤맬까.
선물 상자 안에는 철제 케이스로 된 색연필 세트와 요즘 인기에 봇물이 터졌다는 ‘컬러링북’도 몇권 들어 있었다. 그중 한권은 인형 같은 얼굴에 공주 같은 옷차림을 한 여자 아이들을 테마로 한 것이어서 어릴 적 종이인형 놀이를 하려고 색칠공부깨나 해대던 기억을 새삼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 색칠하고 싶은 페이지는 색칠하고, 또 색칠하다 지치면 안 해도 그만이고, 사람의 얼굴만 가위로 둥글게 오려내도 그만이고…. 결국 우리가 ‘컬러링북’에 미쳐 자다가도 색칠하고 밥 먹다가도 색칠하고 뉴스 보면서도 색칠하고 지하철 타서도 색칠하는 건 어른이 되어갈수록 오히려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자유’ 얘기를 하자니 울컥 울화통이 치민다. 속박은 원래 견뎌내지 못하는 체질이기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담보로 하여 행한 업이 글쓰기였거늘 난데없이 어떤 규제란 것이 훅 치밀고 들어와서다. “예술성과 수요자 관점을 종합 고려하여 우리 문학 저변 확충에 적절한 작품”을 선정해오던 나라 사업인 우수문학도서 제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다음과 같은 항목을 끼워넣어서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인 데다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여야 한다니.
진심으로 묻고 싶다. 기준이랍시고 발표된 저 구절들은 과연 누구의 묘안인가. 기계가 했을 리 없고 외국인이 했을 리는 더더욱 없으며 이 땅에서 이 땅의 교육을 차근차근 받아온 자의 구색에서 나온 옹색함일 텐데 그는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에 있어 이념과 순수의 정의를 과연 알고나 쓴 것일까. 분명한 목적을 내세웠을 때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가 얼마나 촌스러워질 수 있는지 그는 보고도 못 본 척일까.
착하고 얌전하며 말 잘 듣는 시를 못 써서 지레 푸념이 긴 거 아니냐고? 에이 아니다. 지금껏 세권의 책을 펴냈지만 나는 단 한번도 좋은 책이라는 반짝반짝 인증 스티커를 표지에 붙여보지 못했다. 그러니 무슨 설레발을 치겠는가. 그러나 기억하시라. 널리 읽힐 만한 책을 나라에서 일정 구입, 필요한 곳에 배포하는 이 사업의 시작은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