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30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임시총회에서 대단한 갑질이 연출됐다. 당시 부천시장이자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홍건표 전 시장이 청원경찰들의 엄호 속에서 끝내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해촉했다.
영화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집행위원장은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는 표면적 이유를 들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8회 영화제 개막식 때 김홍준 위원장이 홍건표 시장의 ‘이름’을 제대로 호명하지 못한 ‘괘씸죄’가 해촉의 실제 이유였다라는 것을. 누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결코 꽃이 될 수 없었던 한 시장의 애절한 복수극이랄까. 덕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이후 수많은 부침을 겪어야 했고, 그렇게 호명되고자 앙망했던 시장 그 자신의 이름도 유권자들 뇌리에서 까무룩 잊히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딱 10년이 흘러, 이번엔 부산국제영화제. 서병수 부산시장은 인적 쇄신만 요구했다고 주장하지만, <다이빙벨> 상영이라는 ‘괘씸죄’를 들어 이용관 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이 당사자와 영화계의 중론이다. 시장 자존심이 상했든, 청와대 자존심이 상했든, 영화 한편 상영했다고 지난 20년 동안 영화제의 버팀목이었던 위원장에게 합당한 사유 하나 없이 사퇴를 종용하는 것이야말로 슈퍼 갑질의 궁극적 완성이라 할 만하다.
조현아에게 땅콩이 눈엣가시였다면, 서병수에게는 <다이빙벨>이 눈엣가시. 조현아가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퇴출시켰다면, 부산시장은 20년 영화제 역사를 뒤로 후진시켜 위원장에게 퇴출 위협을 가한 것이다.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영화제를 놓고 직권남용의 갑질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조현아보다 한층 더 고약하다. 설상가상, 영화제 매뉴얼의 1조는 바로 ‘표현의 자유’, 그 매뉴얼의 기초도 전혀 숙지하지 못한 채 버르르 갑질이라니.
부산시의 영화제 기금은 시장 지갑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국민들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이용관 위원장을 비롯해 영화제를 키워온 스탭들의 노고, 한국 영화계의 부단한 참여, 그리고 무엇보다 발품을 팔아 영화제를 찾은 관객의 지지가 한데 모여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공동 자산인 것이다. 게다가 부산영화제는 80년대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던, 일종의 영화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일개 시장의 눈치 없는 갑질에 무너질 만큼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뜻이다.
부천에서부터 부산까지, 지자체 인사들이 영화제를 사유화하는 구조적 ‘갑질’의 악순환의 고리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네 문화적 삶의 질, 그리고 해당 시와 영화제의 상호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도 되지 않았나. 영화제의 자율성이 무너지면 표현의 자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