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냐’의 신버전 속뜻 ‘아이폰 배터리 갈아 끼우는 소리 하네’의 구버전
주석 당신의 친구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녀에게 애인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십중팔구 저 말을 떠올릴 것이다(이 말을 발설하지 않기를 추천한다). 친구가 짝사랑하는 이의 애인이 축구를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가 아침마다 조기축구회에 나가는지 뒷조사도 안 해봤으면서, 왜 우리는 저 이상한 비유를 떠올리곤 하는 것일까?
사실 이 비유의 원형은 신화시대의 영웅담이다. 아르고호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부왕의 땅에 돌아온 이아손에게 삼촌은 콜키스에 있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면 왕위를 넘기겠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콜키스에 도착한 그는 한 여자의 도움을 받아(그녀가 용에게 졸음이 오는 약을 뿌렸고, 용이 잠든 새에 양털을 훔쳤다) 임무를 완수한다. 저 속담은 영웅 이아손과 보물인 황금 양털 그리고 보물을 지키는 괴물이라는 삼각구도를 축구 이야기로 변환한 것이다. 키커인 영웅, 골이라는 보물(‘goal’은 목표란 뜻이다), 그리고 그의 ‘득템’(골인)을 저지하려는 훼방꾼이라는 삼각구도로.
그런데 이 비유는 좀 이상하다. 아무리 영웅적으로 포장해도 진짜 훼방꾼은 골인을 꿈꾸는 키커 자신이다. 골과 골키퍼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 속에 숨은 징그러운 욕망을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그녀를 짝사랑한 게 아니라 ‘골인’(=‘황금 양털이라는 골’을 얻기)을 짝사랑했다. 발사(‘슛’에는 사정이란 뜻도 있다)하는 남자와 슛이 들어갈 자리로 표현되는 여자라는 비유는 노골적으로 성적이다. 끄집어내오는(‘골아웃’) 게 아니라 집어넣는(‘골인’) 거라면 목표 역시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안쪽’ 어디일 수밖에 없다. 키커(그녀를 따라다니는 남자)와 골키퍼(그녀가 사귀는 남자)는 사람인데, 그녀는 고작해야 골대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용을 물리치고 양털을 얻는 것도 아니다. 키퍼 몰래 골인만 하겠다는 거다.
이 끔찍한 충고에 “골 먹는다고 골키퍼 바꾸냐?”로 반문하는 건 너무 소극적이다. 우리는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첫째, 그녀는 골대가 아니라 주심이다.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든 게임의 지배자란 뜻이다. 둘째, 그이 역시 골키퍼에 그치지 않는다. 키퍼(keeper)를 검색해보라. 그러면 모기 퇴치기에서 도어록, 이끼제거제까지 수많은 상품들이 뜰 것이다. 키퍼가 막는 그 사람이 모기, 도둑, 이끼로 비유되는 쓰레기란 뜻이다. 저 충고를 새겨듣는 사람이란 짝사랑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스토커일 뿐이다.
용례 그래도 주변에서 저 말을 중얼거리는 자가 있다면 이 골키퍼를 추천한다. 근접 방어 시스템(Close in Weapon System)의 하나인 네덜란드제 골키퍼(Goalkeeper). 군함에 장착하며, 30mm 철갑고폭소이탄을 분당 4200발 발사하여 다가오는 미사일을 파괴한다. 4초 이내에 360도 회전할 수 있으며 탐지에서 요격까지 5.5초가 걸린다. 1500m에서부터 요격 가능하고 500m 앞에서는 100% 명중률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