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들 하는데, 정부 수준에 맞는 국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 정산 파동과 자원외교 비리가 나란히 실린 신문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랏돈 500억원, 5천억원 탕진하는 것보다 내 호주머니 5만원, 50만원 빠지는 게 더 중요한 우리는 어느 왕국의 신민일까. 아니 어느 정글의 동물일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어 고소득자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건 어느 정도 합의된 사항이다. 그런데 공제 자격과 기준 등이 정교하게 짜이지 않은 까닭에 적용 범위는 뒤죽박죽이고 일정 벌이 이상이면 환급을 못 받거나 더 떼게 됐다. 당연히 세수가 는다. 사실상의 증세다. 알고도 이랬다면 대국민 사기극이고 모르고 이랬다면 무능함의 끝판왕이다. 진작에 ‘세수 부족이 심각하니 이제 13월의 월급은 없는 걸로’ 말만 했어도 전국의 월급쟁이들이 이렇게까지 열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증세가 불가피하니 법인세, 금융소득세도 올리겠다’면 이렇게까지 분기탱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권 이래 정부여당이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보는 나도 당황스럽다. 들끓는 여론에 떠밀려 허둥지둥 내놓은 대책이란 게 공제 폭 늘리고 계산 다시 해서 소급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법인세는 안 건드린단다. 이것들이 진짜 우민화 정책을 제대로 쓰는구나 싶었다. 모욕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곧이어 지지도가 쫙쫙 빠지는 모습을 보니…, 아 이것들이 진짜 민심을 제대로 아는구나 싶다.
이게 진짜 민심인 거야? 말문이 막힌다. 그간 이 정권의 지지율이 기형적이고 허수가 많다고 여겼지만, 지지율이 빠져도 이런 식으로 이런 이유로 ‘모냥’ 빠지게 빠져서는 안 되는 거잖아. 세금 1조원 쓰임새보다 내 환급분 1만원이 더 중요한 그런 어리석은 국민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셈 잘하는 국민이고 싶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