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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지 않는 과거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와 <국제시장>의 유사 메커니즘에 대해

tvN <응답하라 1997>(2012)에서 우리는 윤제(서인국)와 시원(정은지)이 어떻게 21세기에 진입했는지 알고 있다. 공부 머리가 있던 윤제는 법대에 진학을 해 판사가 되었고, H.O.T가 등장하는 팬픽을 쓰던 시원은 글재주를 살려 방송작가가 되었다. 그들이 회상하던 1997년의 일들은 2012년이라는 현재와 무관하지 않고,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공들여 설명한다. 같은 해 한발 앞서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2012)은 그 정도로 상세하게 성장담을 들려주진 않지만, 적어도 서연(한가인)과 승민(엄태웅)이 어떤 과정을 겪어서 이렇게 시니컬한 어른으로 성장했는지 되짚어볼 만한 단서들을 던져준다. 그리고 과거 제대로 매듭짓지 못해 잔뜩 엉킨 채로 있었던 감정의 실타래를 30대가 되어 풀어냄으로써, 두 사람은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한국민속촌처럼 재현된 90년대

<응답하라 1997>과 <건축학개론>으로부터 2∼3년이 지나 도착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는, 조금 이상하다.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을 불러모아 연 콘서트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맥락을 최대한 지우려 노력한다. 무대 설치부터 카메라워킹, 자막 스타일과 가수들의 의상까지 철저하게 90년대를 ‘고증’해낸 <토토가>는 정작 그래서 90년대가 어떤 시절이었는지, 90년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무엇이며 당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왜 오랫동안 무대를 떠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물론 일찍 가정을 꾸려서 육아에 전념하느라 무대를 떠났던 S.E.S의 슈라든지, 소속사와의 불화로 팀을 떠난 터보의 김정남의 사연처럼 개인사적인 층위에서 소비될 만한 이야기들은 소개가 된다. 그러나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중 적잖은 수가 왜 가요 시장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자취를 감췄는지에 대해서 <토토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토토가>는 그저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로 돌아가는 쾌감에만 집중한다. 덕분에 당대를 기억하는 이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지만, 90년대에 대한 기억이 희박한 10~20대 시청자들은 늘 즐겨보던 <무한도전>이 갑자기 자기에게만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것 같은 낯섦을 경험해야 했다.

<토토가>가 현재와 과거를 잇는 맥락까지 지워가면서 시대에 대한 평가를 피하고 대신 고증과 재현에 집중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참여한 가수들에게 최대한의 예를 갖추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토토가>에 출연한 가수 중 적잖은 수는 2000년대 음반 시장의 몰락과 산업의 고도화, 음원 중심 시장으로의 재편에 적응하지 못해 급하게 대중 앞에서 사라진 이들이었다. 그 폭력적인 세대 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상대적으로’ 초라한 오늘을 부각해야 하는 일인데 이 암울함은 사실 특집 제목에도 암시되어 있다. 90년대 화려했던 스타들(<토요일 토요일 밤에>)에게, 재발견되어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소개되는 기회를 주자는(<나는 가수다>) 기획 의도 자체가 그들의 오늘이 지지부진함을 증거하는 셈이다.

그러나 예를 갖추기 위해 이런 암울한 이야기들을 덜어내고 과거를 충실하게 재현한 결과, <토토가>는 90년대 회고의 붐을 일으켰던 일련의 작품들과는 다른 결을 지니게 되었다. 현재와 과거는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2014년’이라는 자막으로 현재의 삭막함과 초라함을 언급할 뿐, 90년대와 2015년 현재가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는 없어진 것이다.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가 ‘전설’로 호명된 가수의 노래를 후배 가수들이 당대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나마 과거와 현재 사이에 전승과 재해석이라는 연결고리를 남겨둔 것과 달리, <토토가>는 훼손되지 않은 형태로 완벽하게 복원된 90년대로만 존재한다. 마치 한국민속촌처럼 잘 재현되었으나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닌 전시된 공간으로만 기능하는 테마파크로서의 90년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갖출 필요는 없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예전에도 여러 차례 <무한도전>은 모든 세대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단 쭉 보아왔던 이들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쇼라고 이야기한 바 있고, 타깃 시청자층이 잠시나마 즐겁고 신나게 놀았으면 그것으로 <무한도전>은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다른 곳에서 유사한 현상이 또 일어나고 있다면 어떨까? <무한도전>과는 그 소구층이 전혀 다른, 정반대편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면?

가치판단이 없는 스펙터클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가 헤쳐온 역사에 대한 어떠한 가치평가도 하지 않는다. 윤제균 감독의 목적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가치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가면서 가족을 챙기고 그 세월을 버텨낸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헌사다. 극중 자신의 실수로 흥남 철수 때 아버지와 생이별했다는 죄의식과,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덕수(황정민)는 평생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으로서 살아간다. 문제는 덕수가 버텨낸 ‘그 세월’이 어떤 세월이냐는 것인데, 윤제균 감독은 그 누구도 자극할 생각이 없다. 덕수는 가족을 위한 헌신만 생각할 뿐 자신이 처한 시대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는 평면적인 사람으로만 존재한다. 덕수는 파독 광부가 되어 독일에 가서도 당대 한국 젊은이들이 독일로 집단 이주노동을 가야 했던 이유에 대해, 그걸 왜 정부 차원에서 모집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저 가족의 맏이로서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대야 하기에 독일에 왔을 뿐이다. 덕수는 베트남전쟁에 왜 한국 군대가 참전해야 했고 왜 한국 기술자들이 파견되었는지도 묻지 않는다. 여동생의 결혼자금과 고모부가 팔아 치우려는 가게를 인수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광부와 간호사 파독이나 베트남전쟁 참전과 같은 역사가 국가 단위의 경제를 위해 젊은이들의 노동력과 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어두운 시대에 대한 어떠한 가치판단도 피해갔기 때문에, 덕수가 헤쳐온 ‘그 세월’은 오로지 스펙터클로만 설명이 된다. 중공군의 흥남 폭격, 무너져내린 독일 탄광, 폭탄 테러를 당한 베트남 USO. 역사적 사건이 지니는 의의나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의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그 시대를 설명하려다 보니, 영화는 덕수가 체험해야 했던 ‘고난’을 마치 롤러코스터의 어트렉션처럼 시퀀스마다 전시하는 데 그친다. 경의를 바치려는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선택이, 덕수를 평면적인 인물로 박제화하고 그가 온몸으로 뚫고온 세월을 놀이기구처럼 소비하는 결과로 이어져버린 것이다. 현재와 대화하지 않고 박제된 채 전시된 과거는 이해받지 못한다. 노년의 덕수는 자식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며, 그 또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대신 방으로 들어가 혼자 담배를 태우며 헤어진 아버지 사진을 볼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대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작품은 결국 보는 사람 입맛에 맞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게 되어 있다. 90년대 가요계를 보며 “음악성 대신 춤에 치중하는 통에 가요가 질적 하락을 겪고 있다”고 말하던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엔 바로 그 90년대를 복원한 <토토가>를 보며 “90년대에는 이렇게 가요계에 다양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온통 아이돌 천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국제시장>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폭압적인 시대에 대한 은유가 되었던 국기하강식 장면은, 대통령의 발언 속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는 장면”으로 탈바꿈되어 무조건적인 애국심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 나는 <토토가>나 <국제시장>이 같은 층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김태호 PD와 윤제균 감독이 각각 선의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의심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세대와 그 세대가 헤쳐온 시대에 경의를 바치겠다면서 그 시대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드러내지 않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서글플 따름이다. 덕분에 멀쩡하게 살아 숨쉬는 90년대 가수들이나 <국제시장>의 덕수 세대들은 박제화되었고, 그렇게 공인된 권위에 어떠한 질문을 던지거나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이게 뭔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