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내가 니 어미다”와 호응하는 말 속뜻 “다리 밑에서 주웠어”와 반대되는 말
주석 <우정의 무대>를 기억하시는가? 1988년부터 1997년까지 MBC가 제작한 군인 위문 예능 프로그램이다. 전국의 군부대를 돌면서 방송을 진행했는데 포맷은 일정했다. 첫째, 초대가수의 공연. 관객의 호응을 고려해서 주로 젊은 여성 가수나 걸그룹을 섭외했다. 둘째, 휴가증을 놓고 벌이는 군인들의 장기자랑. 주로 막춤이나 촌극이 사랑을 받았다. 셋째, 해당 군부대의 홍보 영상. 주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기와를 깨거나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총질을 했다. 넷째, 애인과의 면회. 부대장이 즉석에서 외박증을 끊어주면 다들 신음을 내뱉었다.
이 프로의 하이라이트는 ‘그리운 어머니’ 코너였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이런 노래로 분위기를 잡고, 사회자의 신파조 멘트가 이어진다. “어머님의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고, 설거지에 빨래에 어머님 손이 마를 날 없었는데 지금 어머님 습진은 다 나으셨는지….” 이 정도 말만 들어도 이미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시작된다. 장막 뒤로 어머니의 모습이 얼비치면 사병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온다. 장막 뒤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병사들이 입을 모아 외친다.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우정의 무대>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모아서 만든 이상한 극장이다. 제목이 내세우는 덕목은 ‘우정’이며, 사회자가 경례할 때 내세우는 구호는 ‘충성’인데, 무대 위의 공연이 보여주는 컨셉은 ‘섹시’이고, 하이라이트에서 요구되는 감정은 ‘모성애’다. 거기에 홍보 영상 속 사병들의 저 눈빛은 적의 어떤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살기’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삶의 덕목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정’이란 이성애가 금지당한 폐쇄적 공동체를 지칭하고, ‘충성’이란 그 공동체가 아무리 떠들썩하다고 해도 실제로는 군기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실제로 좀 ‘심하게’ 놀았던 사병들은 영창에 다녀오기도 했다), ‘섹시’는 피끓는 청춘들에게 제공해야 할 시청각 재료이고, ‘모성애’는 저 용맹한 군인의 이면에 엄마 품속의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기’는…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하지만 “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란 저 단언에는 일말의 진실이 숨어 있다. 모든 게 망가진 자리란 자신의 근원마저 부정된 자리다. 아버지가 내게 “다리 밑에서 주웠어”라고 말 건네는 바로 그런 자리 말이다. 그때 우리는 최초의 근원을 상기해야 하며, 그래서 있는 힘껏 외쳐야 한다.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어머니는 있다고, 저 장막 뒤에 있는 분은 내 어머니가 확실하다고.
용례 그 뒤에도 <청춘! 신고합니다>나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어떤 프로도 <전국노래자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전국의 군부대를 돌며 장병들하고만 노는 프로가 전국을 돌며 모든 주민들과 노는 프로를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는가? 노는 물도, 스케일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