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감독은 혜성처럼 등장한 독립애니메이션계의 기대주다. 대학 2학년 때 만든 첫 단편 <코피루왁>으로 2010년 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을 수상해 주변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 후 4년, 한지원 감독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과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피루왁>을 시작으로 <학교 가는 길> <럭키 미> <사랑한다 말해> 4편의 단편을 묶은 <생각보다 맑은>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단편을, 그것도 학창 시절 작업과 졸업작품을 묶어 극장용으로 개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의미다. 기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선함과 참신함은 기본이고 청춘의 고민을 솔직하고 깔끔하게 담아 대중성도 충분히 갖춘 수작이다. 어쩌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내일을 맑게 해줄 한지원 감독에게 첫 극장 개봉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얼마 전 첫 시사를 마쳤다. 소감이 어떤가.
=심하게 예민한 상태? 4편의 단편을 모아서 보는 거니 지루해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객석에서 관객이 기지개 한번 켤 때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웃음) 그래도 끝난 후 예상보다 훨씬 꼼꼼하고 애정 어린 질문에 재밌게 봐주신 분들도 많구나 싶어 조금 안도했다. 솔직히 아직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4편의 단편, 그것도 첫 단편부터 졸업작품까지 묶어 극장에서 개봉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해 중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쪽에서 제안을 해왔다. 좋은 기회를 주신 데에 감사하고 있다. 사실 그간 선배 감독님들의 응원과 격려는 많았지만 일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설렌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한정된 관객과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최근 애니메이션 전공자가 아닌 분들도 알아봐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만큼 주변의 기대가 남다르다. 사실 부담감도 적지 않을 텐데.
=처음엔 겁도 나고 걱정도 됐다. 기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상업영화 시스템이 파악이 안 돼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감이 안 온다. 주변의 반응에도 민감하고 고민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내 손을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다. 될대로 되라는 느낌이랄까. (웃음)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또래 친구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모자란 부분은 있어도 스스로 부끄럽진 않은 작품들이다.
-‘한국의 신카이 마코토’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감히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1인 작업, 배경에 집중하는 작화 스타일, 감수성 등 때문에 연상해주시는 것 같다. 하지만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꾸준히 작업해 차별화된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다.
-애초에 극장판으로 기획된 게 아니라 극장용으로 묶어서 개봉하는 만큼 어려움은 없었나.
=흐름이 끊어지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단편마다 호흡이 다른 만큼 그걸 70분 이상의 호흡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4편의 이야기가 관통하는 정서를 따라오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장벽들이 있다. 행복을 위해 최고를 꿈꾸지만 그 과정에서 도리어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는 걸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생각보다 힘이 들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행복의 가치와 성공의 가치는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짧게는 <생각보다 맑은>을 ‘생각보다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웃음) 길게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주변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내 이야기를 제시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솔직하게는 적어도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은 흥행했으면 좋겠다. (웃음) 재밌게 봐주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음 작품에서 보완해 돌아올 테니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