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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횡단하는 94일의 여정 <와일드>

왜 걷는가. 26살의 여성 셰릴(리즈 워더스푼)은 고통을 마주하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와일드>는 야생적인 자연을 횡단하는 94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녀가 정작 이곳에서 맞서야 할 것은 자연의 황량함이 아니라 내면의 황량함이다. 가난과 가정폭력을 겪고 성장해 자신의 온 존재의 근원이었던 어머니의 죽음까지 경험한 셰릴 스트레이트는 자신을 방기한 채 외도와 약물에 탐닉하다 결국 이혼에 이르고 만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에 직면한 그녀는 거처할 곳도, 살아야 할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문득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PCT는 남미에서 북미를 가로질러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약 4300km의 악명 높은 도보여행 코스다. 거친 등산로, 눈 덮인 산맥, 사막과 화산지대까지 극한의 자연환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 자신의 몸무게를 능가하는 짐을 꾸려 멘 셰릴은 첫날부터 녹록지 않은 여정에서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격언을 새기며 마음을 추스른다. 감정적 고통을 육박하는 신체적 고통 속에서 오로지 공허하고 앙상한 자기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셰릴은 길고 험한 여정을 지속해간다.

극한의 자연환경에서 혼자 감행하는 트래킹, 대화도 관계도 없는 이러한 설정이 과연 영화화가 될 수 있을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주가가 높아진 장 마크 발레 감독과 실력파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조합은 이를 가능케 했다. 26살 셰릴 스트레이트의 실화 수기를 읽은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 제작자로 나섰고 유명 작가이자 각본가인 닉 혼비가 각본에 가세했다. 고통 속에서도 유머와 강단을 잃지 않는 셰릴의 내적 독백과 감성을 드러내는 음악들이 중요하게 활용됐다. 뜻밖에 영화는 자연풍광의 아름다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관객을 매혹시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셰릴의 내적 고통과 대조되는 무심한 대자연을 조망하며 고통 자체를 응시하는 데 보다 주목한다. 길고 험한 여정을 통해 그녀가 이 길에서 발견한 것은 슬픔을 초월하는 방법이 아니라 순수한 슬픔 그 자체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녀가 자연에서 깨달은 아름다움은 고통의 극복에서가 아니라 고통과 맞설 수 있는 용기의 결과다. 삶의 일탈이 아니라 삶의 지속을 받아들이는 올곧음을 지지하기에, <와일드>는 굳세고 정직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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