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지혜 언니는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컸구나 느꼈다”는 얘기를 어느 글에서 한 적이 있다.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당장 나가라고 했을 때 진짜 집을 나가버리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다(음… 그러기 전에 내가 나가버려야지).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방학이 한창인데도 피곤한 표정으로 학원 가방 메고 다니는 아이들을 본다. 학원 버스로 움직이는 동안 친구와 수다라도 떨면 다행이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엄마 차에 실려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대체 우리는 애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게 하다니.
학원 뺑뺑이 돌리는 사람이라고 모두 내 아이가 남들보다 잘나길 바라서이겠는가. 모쪼록 뒤처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그러다 잘나면 좋고). 그런데 모두 그래버리니 결과적으로 아무도 잘나지 않게 된다. 강준만 교수가 한국인의 ‘전쟁 같은 삶’을 설명하며 언급한 것처럼 ‘구성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각 개인의 합리적 행동의 총합이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 말이다. 너도나도 기를 쓰고 대학 가려니 입시는 경쟁을 넘어 전쟁이 되고,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빚이라도 내어 겨우 학업을 마친들 우르르 쏟아져나온 또래 틈에서 너나없이 반백수가 되는 이런 악순환을 굳이 공부머리 없는 애 다그쳐가며 돈 써가며 키운 부모가 바랐겠는가. 앞선 경험이 다 나와 있는데도 오늘의 부모는 받아들이질 못한다. 네가 못 놓으니 나도 못 놓겠다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이다.
저성장에 고령화까지 더해진 시대, 우리 애들은 어차피 우리보다 잘 살기 힘들다. 그냥 그것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덜 여문 머리통에 뭘 꾸역꾸역 집어넣을 게 아니라 여차하면 그 머리로 못이라도 박게 머리통 근육을 키우는 게 낫다. 기왕이면 품 안에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