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록 장래희망이 현모양처이건만(언젠가 그럴 거라고! 버럭), 일과 가정을 양립하자며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니들 정말 애도 안 키워보고 살림도 안 해봤구나). ‘경력 단절 여성 재취업’, ‘여성 시간제 근무 확대’ 등 속내를 보면 대부분 엄마들을 더 일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럼 애랑 소는 누가 키워.
나는 ‘엄마’를 직업이라 여긴다. 능력과 효율과 무한책임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CEO 못지않다. 눈뜨면 출근, 눈감으면 퇴근이니 대통령도 저리 가라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고, 남자도 할 수 있다. 애 키우고 살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 아니다. 시간이다. 엄마의 시간만이 아니다. 애 아빠가 없다면 애 친구 아빠의 시간이라도 빌려야 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은 어느 가정에나 깊고 어두운 구멍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밥 벌어오는 이는 늘 부재중이다. 애랑 놀기에 앞서 자신이랑 놀 짬도 없다. 이 정도의 국부라면 어지간한 일은 세금 받아먹는 정부가 책임져야 하건만 어찌된 게 의식주는 물론이요 교육도 의료도 노후도 몽땅 가정이 해결해야 한다. 일과 가정은 이미 철저한 종속 관계이거늘 뭘 새삼 양립하자는 건가.
엄마라는 직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특히 특정 당국자들은) 엄마를 ‘휴면계좌’나 ‘자원봉사자’ 취급한다. 묵고 있는 돈을 빼내야지 하는 식이거나, 청소든 마트 계산이든 비정규직이든 알바든 주는 대로 할 것이지 하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업아빠는 절대 나오기 힘들다. 전업아이도 헛소리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내달리거나 쥐어짜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를 우리가 타고 가는 시스템이 강제하고 있다. 어라,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밀어주고 있었다. 이런 개나리 십상시. 모두가 덜 일하고도 멀쩡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노동이 귀한 대접 받는 것은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