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제가 지난 <씨네21>과의 인터뷰(939호)에서도 현장의 공기가 좋다고 했었죠? 변함없어요. <미생>의 맨 처음 촬영은 한석율 장면이었어요. 울산 공장 아저씨들과 술 한잔하며 춤추는 장면과 가로수길에서 전화하며 장그래(임시완)에게 섹시하지 않다고 타박하는 장면이에요. ‘정신줄’을 놓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현장에 떨어지니 정신이 들더라고요. 사실 한석율과 변요한은 많이 다른 사람이라 대본을 보며 공통점을 찾으려 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한 것과 너무 달라서 톤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었어요. 한석율한테 내가 져버릴까봐. 결국 ‘현장’의 생생한 공기가 힘이 돼준 거죠. 영화를 하며 수많은 현장에 있었고, 그 현장들을 사랑했고, 거기서 얻은 힘이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한석율이 붙더라고요. <미생> 4국에서 장그래와 PT시험을 보며 현장의 전투화 얘길 하잖아요. 실제로 울컥해서 말한 거예요. 또 엉덩이 만지다 뺨 맞는 장면 있죠? 엉큼한 남자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막상 그런 신을 찍으려니 부끄러운 거예요. 가짜로 만졌는데 상대배우가 제 뺨을 진짜로 때리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진짜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미생>을 만나서 제대로 일어서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20대의 끝에 남은 작품이 <미생>이란 건 참 고마운 일이죠.
감독님이 항상 말씀하셨어요. 요한아, 창의적으로. 창의적인 게 뭘까. 장그래가 한석율을 보면서 사기꾼이 성자가 되는 데는 3분이면 충분했다고 하잖아요. 그거였어요. ‘얘, 뭐지?’ 물음표를 심어주자. 변태이기도, 사기꾼이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그 선이 아슬아슬했죠.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하죠? 미소를 아끼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한석율이 자신 있게 씩 웃을 때 다들 ‘뭐야?’ 싶잖아요. 동작도 커야 했어요. 탕비실에서도 수시로 몸을 움직이고 제스처를 크게 하잖아요. 잘 보면 원인터내셔널 신입 세명은 각자 포지션에선 대사가 많아도 한석율을 만났을 때는 말을 많이 안 해요. 나중엔 말이 너무 많아 제가 힘들긴 했지만 그게 한석율의 포지셔닝이라고 봤죠. 하지만 저는 한석율을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한없이 유들유들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겐 굽히지 않는 면모도 있어요. 실없이 웃어대도 그 안에 뚝심이 있죠. ‘동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 놈의 의리가 있어요. 안영이(강소라)가 하 대리(전석호)에게 부당하게 혼나고 있을 때 한석율은 하 대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요. 안영이에 대한 의리죠. 거만하게 들릴진 모르지만 나름 프라이드가 있었어요. 한석율이 멈추면 드라마가 멈춘다!
스물아홉에 현실과 충돌
<미생>이 제게 엔진을 달아줬어요. <미생>을 만나기 직전, 저는 배우를 계속 해야 할까 많이 고민하고 있었어요.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너무 막연한 길이 아닌가 했죠. <목격자의 밤>(2012) 때도 제 과욕에 스스로 지쳐서 회의가 많았어요. 다행히 욕심을 비우고 극복했지만요. 아홉수라고 하죠. 스물아홉에 현실과 세게 충돌했어요. 실제로 주변에 연기를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 친구들을 위로해주면서 제 현실도 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 고비에서 <미생>을 만난 거죠. 한번 더 배우 해보라는 뜻인 것 같아요. 그렇게 지쳤던 주제에 이런 말하면 웃길지도 모르는데요. 앞으로도 매번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만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갈증이 많을수록 찾게 되는 것도 많아지더라고요.
어릴 땐 내성적이고 말까지 더듬는 아이였는데 참 많이 변했죠. 알게 모르게 끼가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네요. 그래도 여전히 낯을 많이 가려요. 한석율을 연기할 땐 일부러 더 내려놓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요. 그러다 아침에 변요한으로 돌아와 눈을 뜨면 완전히 다운이에요. 하루를 마칠 때마다 스탭들에게 그랬어요. 오늘도 잘 버텼다, 내일도 잘 버티자. 한석율을 떠나보내고 세부로 다 같이 포상휴가를 갔어요. 서너달 함께한 식구들인데도 변요한으로 돌아오니 또 낯을 가리게 되더라고요. 이럴 땐 또 사람 참 안 변하는구나 싶어요. 처음엔 부모님이 연기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예고에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죠.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국제무역을 공부하려 했는데 이 길은 아닌 것 같았어요. 바로 휴학하고 입대했어요. 군대 안에서도 동생에게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어요. 후임이랑 근무를 나가면 항상 즉흥연기를 했어요. 선임이 이러니 후임이 어쩌겠어요. 같이 연기해주죠. 이등병일 땐 당황하던 친구들이 ‘짬’이 차니까 메소드 연기를 해요. 훈련 중 행군할 때도 힘들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는 거예요. “(영화 톤으로) 빨리 와! 가자!” 며칠 전에도 “너랑 거기서 연기했던 덕에 사회생활 잘하고 있다”고 전화를 받았어요. 회식 장기자랑 때 제대로 한건 했다나봐요.
스트레스 쌓이면 노래방 가서 노래하며 풀거든요. 요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많이 불렀는데 이제 진짜 서른이 됐네요. 예전엔 앞자리가 바뀌는 게 두려웠는데 지금은 서른살처럼 살아보자 싶어요. 그게 뭐냐고요? 저도 몰라요.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쳐낼 건 쳐내고, 어른이 되는 거겠죠. 30대 후반이 되면 멋있어져 있을 거예요. 새해엔 <소셜포비아>로 먼저 인사드리게 되겠네요. <마돈나>도 촬영을 다 마쳤어요. 사건을 지켜보는 레지던트로 출연해요. 앞으로는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미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날카로운 건 중•고등학생 때 많이 했으니 됐어요. 내 얘기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얘기도 많이 들어주고 크게 기복 없이. 그런 게 다 사랑이 아닐까요.
한석율의 포트폴리오
<미생> 16국. 머리를 자르는 순간 모든 게 변한 것 같아요. “무기력을 견디는 방식, 부당과 허위의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 방식으로 한석율은 입을 닫았”죠. 현장에 문제가 생겨서 사달이 났고, 현장 아저씨가 밤에 사무실로 한석율을 찾아오죠. 그때 가슴에 확 오는 게 있었어요. 사람이 환경에 정복당하면 참 무력해지죠. 한석율뿐만 아니라 자연인 변요한이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까지 알게 됐어요. 매번 깨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