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쪽박’의 반의어 속뜻 ‘헐’의 유의어
주석 언제부턴가 대박이라는 말이 나라 곳곳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박 나다’, ‘대박이 터지다’와 같은 문장에 포함되어, ‘큰돈을 벌다’ 혹은 ‘크게 흥행하다’ 정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시작은 한 카드사가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란 말을 히트시킨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연말연시 인사, 이를테면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따위의 말들이 모두 저 말로 대체됐다. 즐거우려면? 부자 되세요. 꼭. 행복하려면? 부자 되세요. 꼭. 복 많이 받으려면? 부자 되세요. 꼭. 강부자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왜 ‘메리’와 ‘해피’와 ‘복 많이’를 대신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물신숭배가 너무 많이 확산되어 편의점이나 음식점만 가도 “3천원이십니다”, “주문되셨습니다”와 같은 이상한 존댓말을 흔히 듣는 나라가 되었다. 돈이 존대받는 나라, 사람이 주문이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며, 대박은 그런 삶의 필연적인 결론이다.
대박의 어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도박설. 노름판에서 여러 번 이겨 계속 물주 노릇을 하는 일 혹은 그렇게 이긴 사람의 몫을 박이라고 하므로, 대박이란 연속해서 딴 돈, 크게 딴 판돈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바가지설.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 혹은 그 열매를 박이라고 하고, 거기서 얻은 바가지 중에 작은 바가지를 쪽박, 큰 바가지를 대박이라고 한다. 둘 다 방증이 풍부하여 어느 게 정설인지를 결정하기 어렵다. 박(博)은 중국에서 유래한 저포의 일종으로, 전하여 내기 노름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외국에서도 잭팟(jackpot, 복권이나 포커에서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서 쌓인 거액의 돈을 뜻하는 말)이라는 말이 있어, 우리말과 신비한 공명을 이룬다. ‘대박’과 ‘잭팟’, 운이 딱딱 맞지 않는가? 도박 기원설을 지지하는 증거다. 박 하면 당연히 흥부와 놀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박 난 흥부를 따라하다가 쪽박 찬 놀부를 보면 큰 바가지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즘도 “대박”은 안 좋은 용법으로도 쓰인다. “두달 전에 너보고 군대 간다고 헤어지자고 했던 오빠 있잖아? 어제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하다가 만났어.” “헐, 대박.” 바가지 기원설을 지지하는 증거다. 어느 쪽이든 대박은 황폐한 삶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복권이나 노름에서 대박을 바라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며, 놀부가 끝까지 모든 박을 탔던 것은 대박에 길흉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면 저 박은 실은 머리통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아닌가? 박 터지게 싸워서, 네게는 가난을 주고 나는 돈을 갖겠다는 전쟁용어가 대박이다. 이를 머리통 기원설(두개골설)이라고 부르자.
용례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북정책은 여전히 적대적이다. ‘뻥카’라도 쳐서 요행을 얻겠다는 뜻일까?(도박설) 아니면 국민들에게 “헐~ 대박!”이라는 반응을 유도하겠다는 뜻일까?(바가지설) 어느 쪽이든 제발 머리는 썼으면 좋겠다.(두개골설)